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컴퓨터 게임의 시뮬레이션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게임 속에 있는 아바타 일 수 있다. 인간은 ‘아바타’라는 개념은 불교, 힌두교, 기독교, 플라톤주의 철학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아바타’라는 논리를 중심으로 상식적인 풀이를 해보자.
인간은 아바타 같은 존재이다
인간은 아바타인가? 인간이라는 존재를 ‘아바타’라고 본다면, 이는 현실 세계가 하나의 가상적인 체험 공간이라는 의미와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체험하는가? 인간은 인생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아바타의 아이템 레벨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키는 훈련을 하는데 이것은 궁극적으로 영혼의 성장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현실은 가상, 환상이다
아바타는 현실이 가상 또는 환상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
불교의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불교에서도 육체와 현실 세계는 실체가 없는 공(空)이며, 영혼의 수행에 따라 변한다고 한다. 인간의 몸(색)은 곧 공(공허한 것)이며, 우리가 집착하는 현실도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힌두교에서 말 하는 아트만(Ātman)과 마야(Māyā)
힌두교에서는 “아트만(Ātman)과 마야(Māyā)”로 인간의 본질을 설명한다. 힌두교에서 인간의 본질(참된 자아)은 “아트만(Ātman, 참된 영혼)”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이 현실 세계는 “마야(Māyā, 환영, 가상)”라고 한다. 이미 아주 오래전의 썰이지만 현대적 의미로 쉽게 풀어보면 현실은 컴퓨터 가상게임이고 인간은 플레이어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절대적인 실재가 아니라, 한시적이고 변하는 세계일 뿐이며, 우리의 영혼이 몸이라는 아바타를 입고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굴”의 비유
플라톤 철학에서는 “이데아의 세계”가 진정한 실재이며,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단지 그림자라고 본다. 여기서 인간의 육체는 단순한 도구이고, 영혼이야말로 본질적인 존재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그림자’는 환상이고 게임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아바타에서 탈출할 수 있는가?
인간이 아바타 같은 존재로 살다가 죽으면 과연 여기서 탈출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서 출발한다. 부처가 그렇게 중생들에게 간절하게 열반을 말하고 노자가 그렇게 혼자서 도를 닦은 이유도 바로 게임 속의 아바타를 벗어나고자 함이다.
아바타를 벗어나면 어디로 가나
아바타를 벗어난다는 것은, 결국 육체를 떠나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사후에 어떤 존재가 될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 열반
불교의 윤회(輪廻)와 업(業, Karma)에 따르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쌓은 업(行業, Karma)에 따라 다음 생이 결정된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윤회를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최종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 바로 해탈과 열반이다. 열반에 이르면 더 이상 게임 속의 아바타를 벗어나는 것이다. 아바타의 존재를 벗어나지 못하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또 다시 게임 속의 인물로 등장한다.
힌두교의 브라흐만(Brahman)과 합일
힌두교에서는 인간이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해탈”을 얻으면, 참된 자아(아트만)가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과 합일된다고 한다. 아바타(육체)를 벗어나면 진정한 실재(절대적 실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사후에 어떤 존재로 있게되는가는, 우리가 아바타로 살아가는 동안 어떤 행위를 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기독교의 자유의지와 심판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가며, 죽음 이후에는 각자의 행위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고 본다. “하나님 나라(천국)는 너희 마음속에 있다”(누가복음 17:21)라는 구절처럼, 천국과 지옥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인간이 아바타로 살면서 게임을 하다가 죽으면 자신의 행위에 따라서 그 결과를 얻는다는 말이다.
천국과 지옥은 무엇인가?
인간이 죽은 뒤에 간다는 천국과 지옥은 과연 실존하는가? 그런데 천국과 지옥은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불교, 기독교, 힌두교 등 전통적 종교 관점에서도 중요하게 설명이 된다.
불교적 관점에서 부처는 “지금 이 순간이 곧 천국일 수도 있고, 지옥일 수도 있다”했다. 인간이 욕망과 집착에 휩싸여 괴로움을 겪고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지옥일 수 있다. 반면 마음이 깨달음을 얻고 자유로우면, 이 세상이 곧 극락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네가 사랑을 베풀고, 용서를 실천하면 그곳이 천국이다. 하지만 미움을 품고 죄를 짓는다면, 그곳이 지옥이다.”라고 한다. 즉,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지금도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아바타로 살면서 천국과 지옥을 자신의 마음에 놓고 있다. 인간이 살면서 사랑과 평화를 느끼면 천국 같은 삶을 사는 것이고, 분노와 증오에 갇히면 지옥 같은 삶을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볼 때 천국과 지옥은 어느 특정한 곳에 있는 물리적인 공간으로 위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아바타’로 살고 있습니까?
인간은 아바타로 살면서 하나의 삶을 체험하는 존재이며, 죽음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가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 변화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과 윤회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영혼의 심판과 천국·지옥에 관한 내용이 결정되는 것은 결국 인간이 살아 생전의 행위에 근거가 된다. 힌두교에서도 영혼의 합일(브라흐만과의 합일) 등이 중시 되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사후 세계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이 곧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삶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아바타’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답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아바타를 벗어 난 인간은 ‘부처’와 ‘노자’ 뿐이라는 썰도 있습니다.

어느 인간이 현생(現生)에서 게임의 어떤 아바타로 살다가 미션을 수행하지 못하면, 다음 후생(後生)에서 또 다른 게임의 캐릭터로 등장하여서 아바타로 살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스타크래프트 게임에 나오는 테란의 일꾼으로 살면서 광물만 캐다가 죽었는데, 다음 게임이 새롭게 시작되면서 또 광물만 캐는 SVC 인생을 사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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