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환공이 죽은 이유, 간신을 따른 군주의 최후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라는 때가 있었다.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으로 이때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아우르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국의 아주 오랜 옛날 옛적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사람이 살던 시기로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齊)나라에 환공(桓公)이라는 군주가 있었다. 그는 한때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이었던 관중과 포숙아를 기용하여서 정치를 잘하는 듯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욕심이 많았고 사치한 속성이 있었다. 그래서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라는 충신들이 죽자 제환공은 간신(奸臣)들의 발호(跋扈) 아래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제나라 환공이 죽은 이유를 상식적으로 알아봅니다.

제나라 환공이 죽은 이유, 간신(奸臣)을 따른 군주의 최후

제나라 환공(桓公)은 자신을 잘 보좌해 주던 관중이 죽자 이후 자기 입맛대로 사람을 골라 썼다. 그런데 관중이 죽기 이전에 제 환공(齊 桓公)도 걱정이 있었는지 나름대로 사람을 어떻게 써야 할지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환공은 관중이 죽자 수조, 역아, 개방 등 간신 3인방을 기용하였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신하를 잘못 쓴 군주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 상황도 결코 다르지 않다.

관중(管仲), 간신(奸臣)을 쓰면 안된다

관중(管仲)이 늙고 병이 들어 국사를 못 보자 그는 집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제 환공이 관중을 찾아가 물었다.
“병이 들으셔서 앞으로 회복을 못한다면 앞으로 정사(政事)를 누구와 하면 좋겠습니까?”
이러한 제 환공의 물음에 관중은 답했다.
“신하를 아는 것은 군주만 한 사람이 없다고 하였으니 주군이 먼저 마음에 드는 이가 있다면 골라보십시오.”
그러자 환공이 답했다.
“포숙아(鮑叔牙)는 어떻겠습니까?”
“안 됩니다. 포숙은 사람됨이 지나치게 곧고 고집이 세며 일 처리에 너무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나설 우려가 있고, 고집이 세면 백성들의 마음을 잃게 되며, 과격하면 아랫사람들이 등용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패왕의 보좌역이 아닙니다”(한비자 십과十過)
“그러면 환관 수조(竪刁)는 어떻겠소?”
“수조도 안 됩니다. 사람의 본성은 자신을 아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군주가 여인들을 좋아하자 그는 스스로 거시기를 자르고 내궁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자기 몸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왕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위나라의 공자 개방(開方)은 어떻겠습니까?”
“안 됩니다. 제나라와 위나라는 가까워 불과 열흘이면 갈 수 있습니다. 개방이 물론 주군의 일을 돕는다고 하지만 15년 동안 자기 부모를 만나러 가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이게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 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군주를 모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요리사 역아(易牙)는 어떻습니까?”
“역아도 안 됩니다. 역아는 주군이 ‘아직 맛보지 못한 게 있다면 사람 고기다’라고 하자 자기 아들을 죽여서 머리를 고아 삶아 바친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 새끼를 푹 삶아 요리를 해서 군주에게 바쳤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군주를 사랑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좋겠는가요?” 그러나 관중은 ‘습붕(隰朋)’을 추천했다.
“습붕(隰朋)이 그나마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는 사람됨이 안으로는 굳은 마음을 지녔고, 밖으로는 청렴하며 욕심이 적고 신의가 두텁습니다. 안으로 마음이 굳건하므로 표준으로 삼을 만하며, 밖으로는 청렴하므로 큰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또 욕심이 적으므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고, 신의가 두터우니 이웃 나라들과 친교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패왕을 보좌할 사람이 갖추어야 할 조건일 것입니다”(한비자 ’십과’).

간신(奸臣)을 기용한 제 환공(齊 桓公)의 최후

관중(管仲)이 제 환공(齊 桓公)에게 사람을 쓰는 일에 있어 이러한 조언을 주었지만 실제로 사태는 달라졌다. 제 환공은 관중이 조언 준 것 같이 습붕(隰朋)을 기용하지 않고 자신의 입맛대로 수조에게 중책을 주었다. 그리고 제 환공은 수조가 정사를 돌보자 자신은 남쪽으로 유람을 떠났다. 그러자 때는 이때다 싶어 수조는 역아와 위공자 개방을 끌어들여 반란을 꾀했다. 수저, 역아, 위공자 등 간신 3인방은 제환공이 비실비실하고 병이 들자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무휴공자를 왕위에 올렸다. 그리고 병든 제 환공을 골방에 가두고 벽을 쌓아서 곡기를 끊게 하였다. 결국 제 환공은 골방에 갇힌 채 굶어 죽었다. 그런데 제 환공이 죽었어도 그냥 내버려 두어 그는 죽음을 맞이한 지 한참이 지난 8개월이 지나 시체로 발견됐다. 제 환공의 시체는 썩어 문드러졌고 그의 시체에서 나온 구더기들이 궁궐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제 환공은 비참하게 죽었다.

제 환공(齊 桓公)의 죽음에 관한 교훈

제 환공은 자신이 좋다고 믿었던 간신(奸臣)의 농간에 의해 어처구니없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꼴이다. 이러한 제 환공의 죽음은 권력자의 성패가 결국은 자신과 국정을 담당하는 사람에게 달려있음을 알려준다.

관중은 “역아는 아들을 죽여 환공께 음식을 만들어 바친 잔인한 사람입니다. 수조는 환공을 옆에 두고 호가호위하기 위해 스스로를 거세한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입니다.”라고 환공에게 미리 간곡히 충언했었다. 또한 “개방은 위나라 공자로 제환공 밑에서 벼슬을 살면서 부모를 단 한 차례도 찾아가지 않은 불효한 자입니다.”라며 “이들을 멀리하고 포숙의 진언을 들으면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 환공은 달콤한 혀로 군주에게 아첨하는 간신 3인방을 옆에 두고 자신의 비극적 결말을 스스로 자초하였다.

이렇게 간신(奸臣)들의 농간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군주의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의 일이지만 오늘날 현대도 결코 상황은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은 모두 똑 같기 때문이다. 시대만 달리 할 뿐 인간이라는 존재는 지금이나 이전이나 속성은 같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적 상황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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