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자유론》을 통하여 ‘악마의 대변인’을 옹호하였다. 이 책이 쓰인 것이 1859년이니 무려 100년도 넘은 것인데 존 스튜어트 밀은 이미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위기를 알아 채린 것 같다. 오늘은 악마의 대변인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아보자.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의 뜻은 가톨릭교회에서 성인 후보로 지명된 사람이 성인의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는 역할을 맡는 자를 말한다. 그러니까 성인 후보에 대해 악역을 자처하는 것인데, 악마의 대변인이 제기한 모든 반대론에 납득할 만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자만이 성인이 될 수 있다.
밀은 이때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면서 개인은 군중 속에 매몰되었다고 보았다. 지금 세상은 다수가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자신을 다수자의 메인이라고 여기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대중’의 의견으로 둔갑시키는 탁월한 재주도 부린다. 그러나 다수자의 의견이 정말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세계사는 다수가 주장하는 의견에 의문을 품은 소수와 그들에게 귀 기울인 집단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밀이 《자유론》을 저작한 지 벌써 160여 년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그의 문제의식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노출된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포퓰리즘 공세가 넘쳐나고 대중은 깜빡 넘어간다. 그래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외면하는 시대에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밀의 논의를 이 시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유론》은 사실 난해한 책이다. 자유와 다양성을 인간성의 기초로 본 존 스튜어트 밀의 사유에 대해 아는 대한민국 선비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그것도 궁금하다.
왜, 악마의 대변인이 필요한가
악마의 대변인은 1587년 가톨릭 교황 식스투스 5세가 도입하였는데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폐지되었다. 물론 카톨릭 자체에서도 악마의 대변인 제도는 최종적 의사 결정에 있어 심난하였겠지만 그래도 현대 민주주의 제도로 본다면 누군가 그 역할은 해야 한다.
리더와 참모가 모두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면 모든 정책결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것은 효율성에 있어 장점이 되겠지만 진정한 바른 정책에 있어서는 단점이 된다. 리더에게 악마의 대변인이 있다면 그는 리더의 결정과 의견에 대해 분명히 다른 판단을 제시할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그 악마의 대변인을 두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진정한 리더는 반론을 제기하는 참모를 사실은 가까이하여야 한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고 반증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해 주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의견이 자신의 행동 지침으로서 옳다고 내세울 수 있는 절대적인 조건이다’라고 강조했다. 반론의 자유가 조직에 있어 의사결정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비슷한 의견을 가진 다수가 범할 수 있는 오류를 고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조직의 운명이 걸린 정책결정 과정에서 ‘악마의 대변인’은 더욱 완벽한 정책으로 가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이런 ‘악마의 대변인’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악마의 대변인이 존재하지 않고 리더의 귀만 즐겁게 하는 간신들만 바글거리는 조직은 망조가 든다. 리더가 자신의 의견이 100% 맞다고 철석같이 믿고 다수가 그것을 따르지만 악마의 대변인은 치열한 논쟁과 검증으로 문제 제기를 하여서 어찌 보면 좀 더 좋은 정책을 만들게 한다.
조직에서 ‘악마의 대변인’은 무척 골치 아픈 존재일 수 있다. 그래서 다수의 주류들은 이렇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비주류를 악마의 대변인이 아닌 조직의 ‘또라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조직에서 또라이로 불리는 순간 악마의 대변인은 입을 닫고 ‘너네들끼리 잘해보라’는 심사가 작용되고, 모든 사람들은 배가 산으로 가는 줄 알면서 말도 못 꺼내고 리더인 선장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사태가 이쯤 되면 대략 그 조직은 폭망이다.
사람의 지적 능력은 매우 특수한 행태를 보인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결정을 하면 완벽한 결론이 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내린 결정이라도 그 내용은 허당일 수 있다. 반면 거센 토론과 의견 교환이 활발한 조직의 결정은 의외로 질 좋은 결정을 하곤 한다.
최근 대한민국은 어디론가 질주를 하는 모습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자체적으로 다른 의견은 보이지 않고 모두가 “하나를 위한 전체, 전체를 위한 하나”의 양상으로 가는 모습이다. 악마의 대변인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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