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인은 존재했습니다.
왕이나 최고권력자는 미인을 좋아했는데, 문제는 미인으로 인해 나라가 망할 만큼 기울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 안에 최고의 미인을 뜻하는 말로 임금이 여인에게 반하여 나라가 뒤집혀도 모를 만한 미인을 지칭합니다. 경국지색 또는 경성지미(傾城之美)라고도 합니다. 경성지미는 성을 기울게 하는 미인이라는 의미입니다.
경국지색
경국지색이라는 고사가 전해지는 것은 아무리 권력이 있는 왕이라도 여자로 인해 나라를 망칠 수 있고, 남성의 성적 욕망이 결국은 망국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경국지색과 같은 말은 중국의 역사에 흔히 등장합니다. 말희, 달기, 포사, 서시, 초선 등이 바로 경국지색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시대를 달리하여도 결국은 여자에게 빠져서 나라가 기울어지게 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경국지색과 반대어는 박색(薄色)입니다.
나라를 기울어지게 할 만큼의 미인
傾國之色
傾:기울 경, 國:나라 국, 之:~의, 色:여자 색
경국지색 유래
한서(漢書) 이부인전(李夫人傳)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경국傾國’이 ‘경성傾城’과 아울러 미인을 일컫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이인년(李延年)의 시에서 유래합니다.
북방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어,
北方有佳人
세상을 끊고(견줄만한것이없기때문에) 홀로 서있네.
絶世而獨立
한번 돌아보면 성을 기울이고,
一顧傾人城
두번 돌아보면 나라를 기울게 하네.
再顧傾人國
어찌 성을 기울이고 나라를 기울임을 알지 못하랴.
寧不知傾城與傾國
아름다운 사람은 두 번 얻기 어렵네.
佳人難再得
- 한서(漢書)이부인전(李夫人傳)
경국(傾國)이란 말은 李白(이백)의 「名花傾國兩相歡(명화경국양상환:이름난 꽃이 나라를 기울이며 둘이 서로 즐거워한다.)」 구절과 백거이의 ‘장한가’의 「한왕은 색을 중히 여겨 경국을 생각한다.」라는 구절과 항우에게서 자기 부인과 자식을 변설로써 찾아 준 위공(侯公)을 한고조(漢高祖)가 「이는 천하의 변사이다. 그가 있는 곳에 나라를 기울이게 할 수 있다.」 고 칭찬한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경국지색과 비슷한 사자성어
경성지색(傾城之色)
성이 기울어져도 모를 만큼 미인을 말합니다.
만고절색(萬古絶色)
만고는 만년을 뜻합니다. 만년에 한 번 나올듯한 미인이라니 얼마나 미인이라면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절세미인(絶世美人)
세상에 견줄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예쁜 미인을 말합니다.
세상에 미인을 싫어할 남자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뭐 사실 지금도 돈과 권력이 있다면 미인을 찾는 것이 세상 풍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미인으로 말미암아 남자가 자기가 할 일을 팽개치니 결국은 망조가 드는 것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클레오파트라, 마타하리 등이 절세미인이라 하겠으며, 중국사에서는 달기, 말희, 서시, 숙부인, 양귀비, 왕소군, 포사, 하희 등이 경국지색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왕을 뻑 가도록 만든 미인은 장희빈, 장녹수를 꼽을 수 있습니다.
경국지색을 박색으로 그린 화공의 최후
중국 역사에는 이상한 일들이 많습니다. 뭐 워낙 중국이라는 나라가 특이하니 역사에도 황당한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미인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어느 화공에 관한 썰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전한 시대입니다. 한서 원제기를 보면 경녕(竟寧) 원년(기원전 33년) 봄 정월에 호한야 선우가 입조 하면서 중국 전한에 혼인을 요청하자, 대조(待詔) 액정(掖庭) 왕장(王嬙)을 신부로 보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여기서 왕장은 바로 중국의 4대 미인중 한 명으로 꼽히는 왕소군입니다.
<서경잡기>에 따르면 평소 한원제는 후궁이 많아서 어느 미인과 하룻밤을 같이 보낼지 고민을 합니다. 문제는 황제가 모든 후궁들의 얼굴을 모르기에 화공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중 자신이 마음에 드는 미인과 밤을 보내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따져보면 왕이 여자들의 증명사진을 보고 뜨밤을 보낼 후궁을 간택 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화공이 여기서 장난을 칩니다. 후궁들은 화공에게 돈을 많이 주고 자신의 초상화를 아주 미인으로 그려달라고 합니다. 뇌물을 받고 화공은 후궁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실제보다 더 예쁘게 그려줍니다. 그러니까, 뽀샵을 아주 심하게 해서 황제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후궁들은 죽기 전에 황제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큰 은혜를 입고 대박이 나는 것이니 무조건 화공에게 뇌물을 쓰고 자신을 포토샵으로 수정해서 절세가인으로 그려 달라고 합니다.
모든 후궁들이 자신을 미인으로 그려 달라고 하지만 왕장(왕소군)은 돈도 없고 뇌물을 화공에게 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화공은 왕소군을 괘씸하게 여기고 대충 그려 놓고 오히려 박색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이러니, 왕장이 황제의 눈에 들어올 기회도 없었습니다.
이때 흉노와 전한은 그럭저럭 좋은 상태로 평화를 유지했는데, 흉노는 한족 궁녀 한 명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황제는 한족 궁녀를 보내달라는 흉노의 요청에 당연히 미인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못생긴 후궁을 보내기로 합니다. 따라서 초상화만 보고 흉노에 보낼 후보자를 뽑는데 왕장이 못생긴 추녀라 여겨서 그녀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통보합니다. 그런데 막상 왕장(왕소군)을 보내기 직전에 그녀가 못생겼다는 말에 황제가 궁금해서 직접 그녀를 보니 눈깔이 돌아가고 환장할 정도의 미인이었습니다. 여기서 환장이라는 말은 ‘장이 꼬인다’는 말로 너무나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때 충격을 받는 인간의 생물학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왕장이 너무나 예쁜 미인이다 보니 황제는 그녀를 보자마자 넋이 나갔지만, 이미 그녀를 흉노에게 보내기로 약속했으니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중국 황제인데 흉노와 약속을 깰 수는 없고, 어쩔 수 없이 경국지색인 왕장을 보내고 나니 황제는 머리가 돌아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누가 이런 엉터리 초상화를 그렸냐고 하면서 당장 화공을 잡아 오라고 합니다. 당연히 분노한 황제는 왕장을 못생긴 추녀로 그린 화공을 즉결 처분합니다. 아마도 참수로 처형되었을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미인을 의도적으로 박색으로 그려서 황제를 속인 죄가 컸던 것입니다. 이때 황제의 명으로 대가리가 잘려서 죽은 화공의 이름이 ‘모연수’라고 합니다.
상식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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