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에 있어 ‘강조의 정변’은 알면 알수록 괴이한 사건이기도 하다. 표면상으로는 충직한 신하가 고려의 사직을 위하여 무능력한 왕을 끌어 내리고 천추태후와 김치양 등 간신배 일당을 소탕한 정변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 보면 황당하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농간에 당한 가장 큰 피해자는 ‘목종’이다. 강조의 정변 이후에 목종은 왕위에서 쫓겨나고 시해까지 당한다. 그러나 강조의 정변의 발생되는 배경에 있어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천추태후’는 살아서 당당하게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
천추태후
KBS-TV 천추태후 드라마 캡처
강조의 정변의 배경과 과정, 결과를 보면 가장 큰 의문은 어째서 강조가 목종은 죽이고 천추태후를 살려주었는가이다. 그리고 정말로 ‘강조’는 정변을 통하여 조정의 실권을 모조리 장악하고도 자신이 ‘왕’이 되고 싶지 않았는가이다. 강조의 정변은 고려사에 있어서 ‘무신의 난’이 발생되기 이전에 있었던 일로 어찌보면 강조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엄청난 사건이기도 하다.
강조의 정변을 보면서 천추태후를 죽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썰을 풀어보기로 한다. 강조가 천추태후를 죽이지 않은 썰을 믿지 않아도 되지만 역사드라마를 보면서 상상력을 더한다면 훨씬 흥미로울 것이다.
강조는 왜 천추태후를 죽이지 않았는가
강조는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죽이고 현종을 옹립하면서 자신은 조정의 최고권력을 차지한다.
강조의 정변이 나고 1009년 강조는 2월에 중대사(中臺使), 3월에 이부상서(吏部尙書),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승진해 요직을 독차지한다. 강조의 쿠데타가 성공해서 벼슬을 자신의 마음대로 차지하는 것이니 당시의 상황으로서 현종도 어찌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목종도 강조가 죽여 버린 마당에 현종은 강조의 정변 이후 초창기에는 무척 몸을 사렸을 것이다.
강조가 목종을 죽인 이유
강조가 목종을 폐위 시키고 죽인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썰이 있다.
하나는 강조가 목종이 죽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듣고 개경 가까운 곳에 군을 이끌고 갔다. 그런데 왕이 멀쩡하게 살아 있다고 하자 잘못하면 자신이 반역의 수괴로 몰릴까 겁나서 목종을 해치웠다는 것이다. 둘째는 띨띨하고 더러운 추문이 잇따르는 목종에게 강한 불만을 품고 새로운 왕을 세우자니 후환이 두려워서 목종을 죽였다는 썰이다. 아무튼 뇌피셜이 첫째 또는 둘째가 되던지 중요한 것은 목종이 강조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확실하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음모를 꾸몄는데 정작에 죽어나간 것은 ‘목종’이 되었으니, 사실 목종은 굉장히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가장 큰 피해자였던 ‘목종’은 강조의 정변을 통해 죽었다.
현대판으로 해석해 보자면 동네에 조금 모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엄마와 간통한 양아치가 자신의 재산과 모든 것을 강제로 빼앗으려하자 외부에 있는 조폭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 조폭이 와서 나를 칼로 찔러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강조가 천추태후를 죽이지 않은 이유
강조의 정변에 있어 가장 의문스러운 대목이 바로 이것이다. 천추태후는 강조의 정변 이후에 귀양을 갔고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엄청난 사건의 배경이 되는 인물은 왕이 시해 당하고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잘 늙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강조는 왜 천추태후를 살려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많은 추측을 한다.
첫째, 강조가 볼 때 이미 목종과 김치양이 죽은 마당에 천추태후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강조가 자신이 아무리 조폭같이 쳐들어와서 조정을 장악해도 그래도 ‘나는 자비롭다’는 이미지를 남겨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추태후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데 특별하게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강조에게 있었다. 그래서 천추태후는 귀양을 갔을지라도 목숨은 건진 것이다.
둘째, 천추태후도 왕씨인데 목종도 시해하였는데 또 왕씨를 죽이면 세상의 비난을 받을까 강조는 두려웠다. 왕실을 작살 낸다는 세간의 소문은 결코 자신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셋째, 강조가 정변을 일으킨 상황에서 천추태후는 왕씨의 가장 큰 어른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죽을 죄를 저질렀어도 살려두면 훗날 자신에게 유용하게 쓰임새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강조에게 있었을 것이다.
강조는 정말로 왕이 될 생각이 없었는가?
역성혁명(易姓革命)은 단순하게 자신이 힘이 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또 자신이 권력이 많다고 왕이 될 수는 없는 것이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다. 왕이 된다는 것은 하늘이 내는 것으로 군사력을 키워서 왕을 죽였다고 자신이 그 자리에 바로 올라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이성계도 위화도 회군을 하고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바로 자신이 왕이 된 것이 아니다.
왕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단순하게 왕을 죽이고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이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성계도 자신이 고려말 조정을 장악하고 오랜 세월을 보내고 왕이 된 것이다.
이성계는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그렇다면 살짝 이성계가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일단 보자. 이성계는 왕대비인 공민왕의 비 안씨의 교지를 받드는 형식을 빌어 공양왕을 원주로 쫓아내고 배극렴, 조준, 정도전, 김사형, 이제, 이화, 정희계, 이지란, 남은, 장사길 등 조정의 신하들이 국새(國璽)를 들고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가 왕의 자리에 오를 것을 권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1388년 위화도 회군을 하여서 고려를 장악하고 이성계는 4년이 지난 뒤 1392년 7월 17일 마침내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니까 군사적 반란을 일으켰다고 당장 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고려의 가장 큰 어른 격인 왕대비의 교지를 받드는 형식을 갖춘 것이다. 이래야 백성들도 수긍을 하고 민심을 얻어 왕으로 인정을 받는 것이다.
나는 왕이 되고 싶지 않지만,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 나를 왕으로 삼고자 한다니 백성들도 이를 따를 것이 아닌가?
강조도 왕이 되고 싶다면 천추태후를 살려주어야 했다
강조가 비록 목종을 죽이고 현종을 옹립했지만 알고 보면 모든 실권은 자신에게 있었다. 강조도 혼자 생각해보니 사실 내가 왕을 만들었는데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겠는가?
사람의 마음은 다 그런 것이다.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것이다. 그러나 화장실에 가서 아무리 응가를 시원하게 했어도 휴지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그 휴지를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강조가 화장실에 가서 큰 것을 봤어도 휴지가 없으면 냄새나고 지저분한 꼴로 나와야 한다.
여기서, 강조에게 화장실 휴지를 줄 사람은 결국 천추태후가 된다. 즉 강조가 현종을 허수아비 왕으로 옹립하고 조정을 장악한 뒤에 나중에 자신이 왕으로 자리에 오르려면 고려 왕실의 가장 큰 어른격인 천추태후의 교지를 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야 민심도 얻고 백성들이 인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천추태후를 살려두면 차후에 자신이 왕으로 올라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강조의 머리 속에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힘으로 세상을 얻으려해도 인정을 받지 못하면 왕은커녕 반역자로 몰린다. 어쨌든 강조가 왕이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다면 천추태후를 살려주는 것이 나중에 도움을 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조는 왕이 될 팔자는 없었나 보다.
강조가 왕이 될 수 있는 시간적 여건도 없었고 주변의 상황도 녹록하지 않게 돌아갔다.
현종은 왕이 되자 나약한 군주가 아니라 서서히 자신의 본색을 찾아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또한 거란군이 고려로 침공해 강조는 자신이 책임을 지는 지경에 몰렸다. 결국 강조는 거란의 침공에 맞서다 장렬하게 전사를 했지만 만일 거란의 침공이 없었다면 조정을 장악한 ‘강조’가 어떤 행보를 보였을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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