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간통하다 걸리자 남편의 그곳을 뜯어 죽인 여자

조선 500년사가 담긴 기록물은 조선왕조실록이 유일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황당한 일들도 기록되어 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인간이 존재하기에 별별 일들이 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 시대는 유교가 중시 되었던 사회로 남녀가 유별하였다. 따라서 이 당시에 여자의 경우 몸을 단정하게 하고 다른 남자와 정분이 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이때도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 그런지 간통 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였나 보다. 간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와 여자가 사는 세상에는 다 있나 하지만 이상한 일은 역사에 오래 남는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이야기를 보면 간통을 한 부인이 오히려 남편의 음낭을 뜯어내 죽였던 기이하고도 참혹한 사건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에는 ‘졸기’를 빌려 여성의 음행(淫行)을 생생하게 서술한 경우도 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이지(李枝)의 후처 이야기는 그 당시에도 세상의 주목을 끄는 일이었나 보다. 세종실록 35권, 세종 9년 1월 3일 임진 두 번째 기사에 보면 ‘영돈녕부사로 치사한 이지의 졸기’ 중에 김씨가 등장하는데, 이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사망 원인을 아주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이지 졸기

절에 간 부인 김씨가 중과 간통해서 남편이 욕하고 때렸다. 그런데 오히려 김씨가 되레 남편의 음낭을 잡아 뜯는 통에 죽었다고 한다. 여자가 얼마나 힘이 좋으면 남자의 그곳을 뜯어서 죽인다 말입니까?

지금의 뉴스로 나와도 황당한 사건인데, 그 당시에 조선시대에 벌어진 일이라 합니다. 그러니 어찌 사관들이 이렇게 참담하고 황당한 사건을 실록에 싣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왕조실록 원본

○領敦寧府事仍令致仕李枝卒。 , 我太祖從弟也。 年八歲喪父母, 鞠於舅氏益陽君 王琦之第, 太祖召置潛邸, 撫養甚篤, 常在麾下。 丁巳, 太祖征倭于海州, 突賊陣, 殺獲居多, 寇退, 猶不返。 太祖驚曰: “何之?” 適躍馬來謁, 太祖喜曰: “吾以汝爲死矣。” 戊辰, 太祖回軍, 爲中郞將, 率精騎數百, 倍道先行, 捍衛永豐之邸。 壬申, 太祖開國, 賜原從(祿券)〔錄券〕 , 拜上護軍, 歷吏戶禮三曹典書, 封順寧君, 兼掌左廂軍士。 戊寅, 以事坐謫, 太宗卽位, 召復順寧君, 領恭安敦寧府事, 陞右議政致仕, 尋拜領議政致仕, 復爲領敦寧, 仍令致仕。 母忌丑月晦日, 父忌寅月初一日, 每歲抄, 爲考妣上寺, 飯佛齋僧以爲常, 至是亦詣香林寺供佛, 一夜暴卒, 年七十九。 訃聞, 輟朝三日, 賜賻, 官屯葬事。 人言: “與後妻金氏, 上寺留數日, 夜, 金與僧通, 捕奸所, 且責且敺, 金拉腎囊而殺之。 其時從者, 皆金蒼赤故秘之, 外人莫知。” 先妻子節制使尙興, 自忠淸道聞訃而來, 有一赤脚, 告于金曰: “尙興將告刑曹。” 金罔知所措, 發狂如癡, 事遂寢。 里人皆曰: “告官檢屍, 則可以洗冤。” 尙興知其情而不告, 皆不容於天地間之人也。 金卽趙禾之妻也。 諡良安, 溫良好樂良, 好和不爭安。 先妻有四子: 尙興、尙恒、尙珍、尙新。

조선왕조실록 번역본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치사(致仕)한 이지(李枝)가 졸(卒)하였는데, 이지는 우리 태조의 종제(從弟)이다. 이지는 나이 8세에 부모를 여의고 외숙부(外叔父)인 익양군(益陽君) 왕기(王琦)의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태조께서 잠저(潛邸)로 불러와서 두고 무양(撫養)하기를 심히 두터이 하여 상시 휘하(麾下)에 있게 하였다. 정사년에 태조께서 왜구(倭寇)를 해주(海州)에서 정벌할 때에 이지가 적진(賊陣)을 돌격하여 죽이고 사로잡은 것이 많았다. 왜구가 물러갔는데도 이지는 오히려 돌아오지 않으니 태조가 놀라서 말하기를,

“이지는 어디 갔는가.”

하니, 마침 말을 달려와서 뵈옵는지라, 태조가 기뻐하여 말하기를,

“나는 네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고 하였다. 무진년에 태조가 〈위화도에서〉 회군(回軍)할 때, 이지는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날랜 기병(騎兵) 수백 명을 거느리고 먼저 떠나서, 이틀 걸릴 길을 하루에 달려, 영풍(永豊)의 사저(私邸)를 방위(防衛)하였다. 임신년에 태조가 나라를 세우자 원종 녹권(原從錄券)을 내리고 상호군(上護軍)에 임명하고, 이조·호조·예조 삼조(三曹)의 전서(典書)를 역임(歷任)하고, 순녕군(順寧君)에 봉해지고, 좌상 군사(左廂軍士)까지 겸하여 관장(管掌)하였다. 무인년에 어떤 사건에 연좌(連坐)되어 귀양갔었다. 태종(太宗)이 왕위에 오르자, 불러와서 순녕군(順寧君) 영공안돈녕부사(領恭安敦寧府事)로 복직(復職)되고, 우의정에 승진되어 치사(致仕)하였다. 얼마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어 치사(致仕)하고, 다시 영돈녕(領敦寧)이 되어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이지의 어머니 기일(忌日)은 섣달 그믐날이고, 아버지 기일(忌日)은 정월 초하루이므로, 매양 세말(歲末)에 죽은 부모를 위하여 절에 가서 부처를 공양하고 중에게 재(齋)올리는 것으로 떳떳한 일로 삼았는데, 이 때에도 향림사(香林寺)에 나아가서 부처에게 공양하였다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졸(卒)하니, 나이 79세였다. 부음(訃音)이 위에 들리니, 조회를 3일 동안 정지하고, 부의(賻儀)를 내리고, 관(官)에서 장사지내는 일을 다스리게 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지가 후처(後妻) 김씨(金氏)와 더불어 절에 가서 수일 동안 머물렀는데, 밤에 김씨가 중과 간통(奸通)하므로, 이지가 간통하는 장소에서 붙잡아 꾸짖고 구타하니, 김씨가 이지의 불알을 끌어당겨 죽였다.”

고 하는데, 그때 따라간 사람이 모두 김씨의 노비(奴婢)였기 때문에 이를 숨겼으니, 외인(外人)들은 알 수가 없었다. 이지의 전처(前妻) 아들 절제사(節制使) 이상흥(李尙興)이 충청도에서 부고를 듣고 왔는데, 한 남자 종이 김씨에게 알리기를,

“상흥(尙興)이 장차 〈이 사실을〉 형조에 알릴 것입니다.”

하니, 김씨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광(發狂)하여 천치(天癡)처럼 되니, 드디어 일이 잠잠해지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관청에 알려서 시체를 검사하면 원통함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고 했으나, 상흥(尙興)은 그 실정을 알면서도 관청에 알리지 않았으니, 모두 하늘과 땅 사이에 용납되지 못할 사람이다. 김씨는 곧 조화(趙禾)의 아내이다. 양안(良安)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온량(溫良)하여 즐거워함을 양(良)이라 하고, 화합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음을 안(安)이라 한다. 전처(前妻)에서 네 아들이 있으니, 이상흥(李尙興)·이상항(李尙恒)·이상진(李尙珍)·이상신(李尙新)이었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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