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고사성어 총정리, 고전의 지혜 사자성어 모음

오늘은 뜻 좋은 고사성어 모음, 쉬운 사자성어 모음을 삼국지를 통해서 알아봅니다.

어려운 한자도 고사와 함께 익히면 숨겨진 내용도 재미있게 알고 더욱 쉽게 한자를 익힐 수 있습니다. 뜻깊은 고사성어 모음, 교훈이 되는 사자성어 모음과 함께 쉽고 재미있게 한자 뜻과 어휘를 익혀서 삶의 지혜를 충전하시기 바랍니다. 삼국지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동양의 대표적인 고전 명작이다.

삼국지 고사성어 총정리

삼국지에 나타난 많은 영웅호걸들의 성공과 실패는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좋은 교훈을 제공해 주는데, 여기에 나온 고사성어를 총정리한 내용입니다.


삼국지에 나온 고사성어를 보면 지금도 그 내용들이 모두 현대사회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세상이 물질과 기기만 발달하였을 뿐 결국 근본적으로 인간은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삼국지 시대에 살던 인간이나, 현대에 사는 인간이나 이성과 본능은 모두 같습니다. 그래서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성어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동시에 반성을 하게끔 합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고사성어 모음

간뇌도지(肝腦塗地)

간과 뇌장을 쏟아낸다는 뜻입니다. 사지에서 아두를 구해온 조운에게 유비가 도리어 아두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명장을 잃을 뻔했구나!´고 탄식하자 조운이 감복하여 ´간과 뇌장을 쏟아내도 주공의 은공을 갚을 수 없겠습니다´고 말하였다.

강노지말(强弩之末)

강하게 날아간 화살도 멀리 날아가 끝에 이르러서는 비단결 한 장 뚫지 못한다는 뜻. 제갈량이 적벽전에 앞서 손권을 만나면서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서는 강노가 조조의 병력을 뜻한다.

개문읍도(開門揖盜)

문을 열어두고 도둑을 맞이한다는 뜻.손책 사후 그의 뒤를 이은 손권이 자칫 슬픔에 젖어 국정을 그르칠까 두려워 장소가 충고하였다. 유) 개문납적(開門納賊)

거재두량(車載斗量)

훌륭한 인물이 수레로 날아 실을 만큼 많다는 뜻. 오의 사신 조자가 위제 조비를 만나면서 이 고사를 인용하여 오의 실력을 과시하였다. 촉의 장송도 양수에게 비슷한 말을 건넨 적이 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씻고 다시 서로를 상대한다는 뜻. 한낱 무장에 불과했던 오의 여몽이, 노숙의 권유에 책을 펴든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학식을 갖춘 지장으로 모습이 바뀌자, 노숙이 여몽을 칭찬하며 이 말을 하였다.

국궁진췌, 사이후이(麴窮盡膵, 死而後已)

제갈량의 출사표에 등장하는 말. 온 마음의 정성 몸이 부숴질 때까지 노력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정성을 다하겠다는 뜻.

군신수어지교(君臣水魚之交)

´君臣水魚之交´는 주군과 신하가 마치 물과 물고기의 관계처럼 가까운 사이를 말하는데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한 후 이 말을 사용했다. 제갈량을 모시다시피 하여 신야로 온 유비는 그날부터 제갈량을 스승처럼 대접하여 잠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를 본 관우와 장비는 좋게 생각하지 않고 늘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군사라고 하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재주가 있다 할지라도 형장은 지나치게 대우하십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 보기에도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유비가 타이르며 단언했다. 내가 군사를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으니 아우들은 불평하지 말고 두고 보라. 반드시 큰 업적을 쌓을 테니… 관우와 장비는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이렇듯이 주군과 신하가 마치 물과 물고기처럼 돈독한 관계를 맺을 때를 수어지교라고 한다. 이때 유비의 나이는 마흔일곱 살이고 제갈량은 스물일곱 살이었다.

권토중래(捲土重來)

한 번 실패하고나서 다시 그 일에 도전한다는 뜻. 유비가 서주에서 패한 후 한동안 아우들과 흩어져 지냈으나, 여남에서 관우, 장비는 물론 조운까지 합세하게 되자 일시에 그 세력이 전의 배가 되었다.

계륵(鷄肋)

먹으려면 먹을 고기가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 조조 군이 한중에서 철수하기 얼마 전이었다. 그날 밤 조조가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음식이 닭갈비였다. 때마침 하후돈이 들어와, 오늘밤 군호를 무엇으로 할까요? 하고 물으니 별다른 생각 없이 방금 전에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나서 계륵이라고 했다. 하후돈이 전령하기를 오늘밤의 군호는 계륵이라 하였다. 이때 행군주부 양수가 하후돈의 군호를 듣고는 행장을 수습하여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하후돈이 깜짝 놀라 양수에게, 그대는 어찌하여 행장을 수습하는 것이오? 하니 양수가 대답하기를, 제가 군호를 듣고 위왕께서 곧 귀환하실 뜻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계륵이란 것이 뭡니까. 그러니까 먹으려면 먹을 고기가 없고 버리려면 아까운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전황처럼 이제 나아가도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려 하나 남의 치소가 두렵고 여기에 있자 하나 아무 이로움 점이 없는 형국과 똑같지 않습니까. 아마 내일이나 모래쯤 위왕께서 철수할 생각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니 아예 미리 행장을 수습한 것입니다. 하후돈은 원래 똑똑하기로 소문난 양수의 말을 듣고 ´과연 학문이 깊으면 위왕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헤아리는구나´ 하고 칭찬하며 자신도 행장을 수습하니 여러 장수들도 덩달아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조조는 심신이 편치 못하여 밤바람이라도 쏘이려고 막사밖으로 나왔는데 하후돈의 병사들이 제각기 돌아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래서 하후돈을 불러 물어보았더니 양수가 군호인 ´계륵´을 풀이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크게 노하였다. 마치 속마음이 들킨 기분이 드는 데다가 평소 똑똑한 티를 내는 양수가 얄미웠던 것이다. 그래서 군심을 어지럽혔다 하여 양수를 처형하고 머리를 영문에다 효수했다. 바로 여기에서 계륵이 유래되었다.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기느라 촉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 암우한 후주 유선이 촉 멸망 후 사마소를 뵙는 자리에서 ´너무 즐거워서 촉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그를 크게 비웃었다고 한다.

난공불락(難攻不落)

학소가 지키는 진창성이 쉽사리 빼앗기지 않자, 제갈량이 감탄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난형난제(難兄難弟)

형과 아우의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 후한 말엽. 11대 환제 12대 영제대 환관들의 전횡이 심하여 정의파 관료나 관료예비군이라고 할 수 있는 태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당인(黨人)이라는 정치단체를 결성하여 환관정치에 저항, ´당고의 화(黨錮의 禍)´라는 탄압사건을 불러일으켰다. 그대 진식(104-187)은 태구현의 장관으로서 명망이 있었으나 역시 환관정치에 저항하여 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처형되지 않고 나중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손자들을 교육시키며 노후를 보냈다. 그의 장남 원방(元方. 이름은 기 <記>) 은 후한 말 동탁밑에서 시중으로 승진했으나 동생인 계방(季方)은 젊어서 죽었다. 모두 명성을 얻어 아버지나 형과 함께 세 사람의 걸출한 인물이라고 불렸다. 원방의 아들 장문(張文. 이름은 군 <群>)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 위왕 조조 정권을 거쳐 위문제 조비밑에서 대신이 되어 유명한 ´구품관인법(처음으로 관직을 의계품으로 나눈 관제 및 관리등용법)´을 입안 제정하기도 했다. 그 장문이 어릴 적에 계방의 아들인 효선(孝先. 이름은 충 <忠>)과 서로 자기 부친의 공적을 예로 들면서 우열을 논한 일이 있는데 결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부 진식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진식이 말했다. ˝원방은 형, 계방은 아우지만 덕행으로 보면 원방을 형이라고 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해서 계방을 아우라고 하기도 어렵다(元方難爲其兄, 季方難爲其弟).˝ ´난형난제(難兄難弟)´란 말은 여기서 나온 고사로 형제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뜻으로 나중에 바뀌어 상하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이 말을 후학들이 평가하기로 부모 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식의 우열을 가려 품평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가 하면 부모로부터 ´형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은 아우도 기분이 좋을 리 없는데 만일 동생보다 못한 형이라고 평가한다면 어떤 정신적 고통을 받게 될까를 염두에 두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노우지독(老牛☆犢)

늙은 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는다는 뜻으로, 양표가 아들 양수의 죽음 후에 매우 슬퍼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조조는 이러한 양표를 보고는 양수를 죽인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참고) 양표는 이때 모반죄로 낙향해 살고 있었다.

내조(內助)

<아내가 집안을 탈없이 이끌어 남편이 바깥일에 전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위문제 조비의 황후인 곽후(廓后, 187-234)는 원래 군의 장관이었던 곽영의 딸로 태어났을 때부터 남과 달라 곽영이 ´내 딸은 여자 가운데 왕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녀는 조조가 위왕이 되었을 무렵(216년) 동궁으로 들어갔다. 여성으로서 보기 드물게 조비가 황태자가 되는 데에도 책략을 썼다. 조비가 제위에 오르자 참소하여 조예를 낳은 견후에게 죽음을 내리게 했고 222년에 자신이 왕후의 자리에 앉았다. 견후는 머리칼로 얼굴을 덮고 겨로 입을 틀어막은 채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중랑(궁에서 숙직하여 시위하는 관리)인 잔잠(棧潛)이 곽황후를 세우는 것에 반대하여 위제 조비에게 상소를 올려 ´예로부터 제왕의 정치에는 밖에서 정치를 돕는 자뿐만 아니라 내조도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가르침으로 알아야 할 선례나 관례, ´역경´이나 ´춘추좌씨전´에 적혀있는 것을 들어 사람이 신분이 높은 자리를 탐하여 발생하는 많은 불상사와 집안의 불행에 대해 간언하고 설득했으나 위제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급기야는 곽 씨를 황후로 세웠다. 내고의 법도와 황후의 인덕을 뜻하는 말로 시작된 ´내조´란 내부에서 돕는다는 의미로서 내덕의 공을 말하는데 일반 시중에서는 ´내조의 공´이라 하여 널리 아내가 가사를 잘 돌보아 밖의 일을 하는 남편이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단기천리(單騎千里)

조조를 떠나 유비를 찾아가는 관우의 모습을 묘사한 고사. 말 하나를 타고 천리를 내달린다는 뜻.

단도부회(單刀赴會)

칼 한자루를 들고 모임에 나간다는 뜻으로, 여기서 모임이란 위험한 자리를 뜻한다. 관우를 초청하여 죽이겠다는 노숙의 궁벽한 꾀에 대해 관우는 청룡도 한 자루만 들고 찾아가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도리상영(倒履相迎)

신을 거꾸로 신고 손님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왕찬에 대한 설명 중, 그의 스승 격인 채옹이 왕찬의 방문에 신마저 거꾸로 신고 나가서 환영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도원결의(桃園結義)

복숭아나무 정원에서 유,관,장 세 사람이 의형제 결의를 맺고 황건적 토벌에 나선 것을 말한다.

득롱망촉(得籠望蜀)

조조가 한중을 얻고 허창으로 되돌아가려 할 때, 사마의가 조조에게 권하길, ´이 기회를 틈타 유비가 있는 촉을 얻으십시오´라 하였으나, 조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옛말에 농지방을 얻고 촉을 바란다더니, 욕심이 과하군´이라 답변하였다.

돈견(豚犬)

조조가 천하통일에 나서서 25만 대병력으로 장강 연안에 포진하고 주유와 제갈량은 이에 맞서 결전한 것이 유명한 ´적벽대전´이다. 이때 수전에 익숙지 못한 조조는 화공작전이라는 기략에 휘말려 대패했다. 조조는 그 후에도 자주 손권을 치려고 했으나 끝내 무찌르지 못했다. 조조는 탄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가지려면 손중모와 같은 자를 갖고 싶다. 앞서 항복한 형주의 유표 아들 따위는 돈견과 같다 (生子當如孫仲謨, 劉景升兒子, 苦豚犬耳).˝ ´삼국지´ 주해에 ´돈견´은 ´돈아 견자(豚兒犬子)´로 경멸하고 업신여기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자기 아들을 낮추어 말할 때 ´돈아´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건안기를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했던 조조는 무슨 일이 생겼을 때마다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던 것 같다. ´돈견´이라는 악담을 뒤집어보면 쉽게 무찌를 줄 알았다가 의의로 적벽에서 패한 것을 원통해하는 심정도 숨겨져 있을 것이다.

만전지책(萬全之策)

조조가 원소를 격파한 뒤, 유표는 누구를 지지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자 한숭과 유선이 유표에게 건의하기를, ´원소는 우유부단한 자라 분명 조조에게 격파당할 것이다. 조조에게 투항해야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참고) 이 장면은 연의에는 나오지 않는 듯싶다. 후한서 유표 전에 나온다고 한다.

망매해갈(望梅解渴)

<매실로 자극하여 목마름을 풀었다는 이 고사는 조조의 뛰어난 임기웅변술을 보여준다.> 위왕 조조는 ´젊어서부터 기경, 권수가 있었다´고 그에 대한 각종 사료에 나타나 있다. ´기경(機警)´이란 기지가 있고 영리하다는 것이며 ´권수(權數)´는 ´권모술수´를 줄인 말로 남을 기만하는 모사를 말한다. 한마디로 영특하여 여러 사람을 이끌만한 리더십이 있었다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대표적인 기경권수의 예로 전해지고 있다. 위왕 조조가 행군하던 중 물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하여 모든 장병이 목이 말라 허덕이고 있었다. 이 모양을 바라보던 조조는 갑자기 소리쳤다. ˝자! 저 너머에 커다란 매실나무 숲이 있다. 새콤한 열매가 가득 열려 있을 테니까 조금만 더 가면 목마름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장병들은 이 소리를 듣고 매실을 생각하자 절로 입안에 침이 고여 기운을 내서 샘이 있는 곳을 찾아갈 수 있었다. 이 고사를 ´망매해갈(望梅解渴)´이라고 한다. 조조의 뛰어난 재치를 말하는 것이 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사람을 속인 예로써 지적되기도 한다. 이때 매실이 있다고 한 장소는 안휘성 노강현 동남방의 매실나무가 많은 누 은산, 또는 안휘성 추보현 서남방이라고도 하지만 사실인지 아닌지 어느 때 얘긴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 고사는 기경과 권수를 수단으로 정치력을 발휘한 위왕 조조의 단면을 잘 말해 준다고 하겠다.

망천지시(亡天之時)

하늘이 망하려는 것. 17로 제후군이 모여서 원소를 장으로 추대하자, 원소가 동탁의 만상을 이 말로 표현하였다.

명모호치(明眸皓齒)와 폐월수화(閉月羞花)

<조식의 낙신부에서 유래되었다.> 미인을 두고 ´침어낙안(沈魚落雁)´이나 ´폐월수화(閉月羞花)´ 또는 ´명모호치(明眸皓齒)´라는 말이 시나 부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출처를 보면 조조의 삼남 조식이 견 씨를 좋아했는데 그녀는 형인 조비에게 시집가 견후가 되었다. 그녀는 얼마 후 곽 씨에게 황후의 자리를 빼앗기고 죽음을 당했고 조식은 그녀의 유품인 베개를 형 위제 조비로부터 받아 임지로 돌아오는 길에 낙수가에 이르렀다. 그때 조식은 견 씨의 모습을 회상하며 ´낙신부(洛神賦)´를 지었는데 조식은 매우 비감한 심정이 되어 다음과 같이 읊었다. ´엷은 구름에 사인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뿐하다.´ ´폐월(閉月)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낙신부´에서 ´폐월´의 명구를 낳은 부분에 이어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어깨선은 깎은 듯 매끄럽고 허리에는 흰 비단을 두른 것 같다. 목덜미는 길고 갸름하며 흰 살결을 드러내고 있다. 향기로운 연지를 바르지도 않고 분도 바르지 않았다. 구름 같은 모양으로 머리는 높직하고 길게 그린 눈썹은 가늘게 흐른다. 빨간 입술은 선연하게 눈길을 끌고 하얀 이는 입술 사이에서 빛난다. 초롱한 눈은 때로 곁눈질 치고 보조개는 귀엽기 그지없도다.´ 여기서 명모(明眸)란 시원스럽고 맑은 것, 호치(皓齒)는 하얗고 아름다운 이를 말한다. ´명모호치´는 미인의 조건이 되었다. 나중 시인들은 이 말을 빌어 미인을 뜻할 때 명모호치 또는 폐월수화라고 노래했다.

박면피(剝面皮)

<오제 손호가 자기 기분에 들지않는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만행을 저지른 데서 이 고사가 비롯되었다.> 진의 천하통일은 어떤 측면에서 오의 손호 스스로가 행한 폭정 탓에 반대급부로 얻어졌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 포학성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간언 하는 신하를 거열형에 처하거나 뜻에 거역하는 궁녀를 참살해서 격류에 던져버리는 등 갖은 학정을 다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박면피´라는 것도 오제 손호가 얼마나 포악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손호의 잔인성은 마음에 맞지 않는 자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가 진에게 항복하여 낙양으로 끌려갔을 때 진의 실력자인 가충이, ˝어째서 사람의 얼굴 가죽을 벗기는 짓을 했습니까?˝라고 묻자 손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 얼굴 가죽이 두꺼운 것이 우선 밉살스러웠기 때문이었소.˝ 이 고사는 나중 배 씨 어림 속에 수록되었다. ´면피를 벗긴다´는 것은 파렴치한 자의 면모를 밝혀 수치를 맛보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낮가죽이 두껍다라든가 뻔뻔스럽다라든가 염치를 모른다는 것을 ´후안무치´라고 하는데 이것은 ´시경´ 소아의 <교언>의 한편에 ´교언여황(巧言如簧)은 안지후의(顔之厚矣)´ 에서 나온 고어로 이것을 좀 새롭게 구성한 것이 ´남사(南史)´ 변변전에 나오는 ´면피 후(面皮厚)´ 즉 뻔뻔스러운 사람을 두고 얼굴 가죽이 두껍다고 말했다.

백리지재(百里之才)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 노숙이 방통을 유비에게 추천하면서 방통을 이에 비유하였다. 참고) 그러나 연의에서는 이 구절을 ´방통은 백리를 다스릴 인물이 아니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백미(白眉)

마량의 눈썹이 흼을 뜻함. 형제 다섯 중 눈썹이 흰 마량의 재주가 가장 출중하다 하여, 여럿 중 제일 나은 인물 혹은 물건 따위를 이름이다.

복소지란(復巢之卵)

공융의 두 아들이 한 말. 둥지가 부서지면 알이 성할 리가 없다는 뜻. 공융이 조조의 노여움을 사 끌려가자, 그의 비복들이 그 두 자제에게 몸을 피하라고 권했지만, 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유) 복소지하 안유완란 (復巢之下 安有完卵), 소훼란파(巢毁卵破)

비육지탄(悲肉之歎)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하고 불우한 현실을 자탄하는 말> 어느 날 유표의 초청으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유비가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마치고 우연히 자신의 허벅지에 찐 살을 본 유비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자리로 돌아왔으나 운 것을 눈치챈 유표가 이상히 여겨 물었다. ˝아니, 웬 눈물이오?˝ ˝제가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세월을 살면서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한실을 다시 일으키는 것입니다. 제가 전쟁터에서 평생을 보내 언제나 말등에 앉아 있었으므로 허벅지에 살이 찔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살이 많이 찌고 달라져 있었습니다. 이룬 것은 없고 그저 무위도식, 살만 찌고 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불우한 상태에서 지내는 것을 한탄하는 이 말은 양양일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쓰이고 있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융중에 있는 제갈량의 초려로 세 번씩 찾아가는 정성을 보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유비의 인재 영입 방법의 백미로 꼽히는 삼고초려의 이야기는 끈끈한 인간관계에 호소하여 혈연 이상의 정분을 맺고 믿음을 획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비는 제갈량에 대한 소문을 듣고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에도 두 번씩이나 허탕을 치며 성의를 다해 찾아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자 다시 점쟁이에게 물어 길일(吉日)을 잡고 사흘이나 목욕재계한 후 다시 제갈량을 찾아 융중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때 관우, 장비는 화가 났다. 칼 한 자루 휘두를 만한 힘도 없을 서생 하나를 영입하려고 벌써 두 번이나 찾아갔었고 상대가 웬만하면 답례 정도 할 수 있는 일을 안 하는 게 더욱 괘씸했던 것이다. 그래서 유비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유비는 일언지하에 묵살하고 ˝예를 다하여 모셔와야 한다.˝고 호통친다. 결국 세 번째 방문으로 제갈량의 영입에 성공하는데 사람의 일은 오직 정성을 다하는 것에서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예로도 이 삼고초려란 말이 쓰인다.

세한지송백(歲寒之松柏)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른 기상은 겨울이 되어야 안다. 조조에게 투항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시 관우와의 전투에 참여한 방덕이, 패한 뒤 절개를 지켜 목숨을 버린 것을 일컫는 말이다.

소향무적(所向無敵)

이르는 곳마다 맞설 싸울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막강한 세력을 뜻한다. 조조가 형주를 얻고는 기고만장해져서 손권에게 투항하라는 뜻을 암시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주유가 이에 반대하면서, ´우리 군은 가는 곳마다 이기고 대등하게 대적한 자들이 없었습니다´고 하였다.

수어지교(水魚之交)

물과 물고기의 관계. 유비가 제갈량을 물이라고 표현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수화불상용(水火不相容)

물과 불처럼 서로 용납하지 못하는 사이를 뜻한다. 촉의 명장 위연은 국내에서 그를 당해낼 자가 없어서 누구든 두렵게 여겼는데, 오직 장사 양의만이 그를 탐탁히 여기지 않고 그와 자주 맞서곤 했다. 유) 유여수화(有如水火)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 촉의 운명이 바람 앞 등잔일 때에 화색이 이 고사를 인용하여 손휴에게 구원군을 보내기를 간하였다. 참고) 이 고사는 춘추시대 진나라 헌공과 궁지기라는 신하 사이에 오간 대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식소사번(食少事煩)

적게 먹고 일은 많이 한다. 제갈량의 사신에게 사마의가 말하면서, 제갈량은 얼마 안 가 죽으리라고 예언하였다. 참고) 이에 대하여 주부 양옹이 담당하는 군무의 양을 줄이라고 건의했으나, 제갈량은 선주의 은총을 떠올리며 거절한다.

식자우환(識字憂患)

글자를 아는 것이 도리어 근심을 사게 된다는 말. 서서가 조조의 꾀에 빠져 모친을 만나러 허창으로 올라오자, 서서의 모친이 그에게 이렇게 말하며 목을 매달아 자결했다고 한다.

신은구의(新恩久義)

새로운 은혜, 오래된 의리라는 뜻으로, 은혜는 조조에 대한 것이요, 의리는 유비에 대한 것이다. 관우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 조조의 호의에 감사히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유비를 잊지 않았다.

양상군자(梁上君子)

<´대들보 위에 있는 군자´ 즉 도둑을 말하며 쥐를 가리키기도 한다.> 진군의 조부 청류파 출신의 거목이었던 진식은 허난 성 태구현의 장관으로 유명했다. 그가 태구현의 장관으로 있던 어느 해 극심한 흉작으로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허덕이고 있었다. 어느날 밤 도둑이 그의 방에 몰래 들어와 들보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진식은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 옷차림을 단정하게 한 다음 아들과 손자를 불러 타이르면서 말하였다. ˝사람은 수양을 게을리하면 안된다. 좋지 않은일을 하는 사람도 본시부터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이다. 하던 버릇이 습성이 되어 그렇게 되는 것인데 저 ´양상(梁上)의 군자(君子)´도 바로 그렇다.˝ 대들보 위에 바짝 웅크리고 있던 도둑은 크게 놀라 스스로 뛰어내려 엎드려 죄를 받으려고 했다. 진식은 조용히 타이르며 ´보기에 악인 같지 않으니 깊이 반성해서 자기를 극복하면 선으로 되돌아 설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배고픈 탓이겠지´라고 말하고 비단 두필을 주며 놓아주었다. 그 이후 현에는 흉년이 들어 먹을것이 없어도 일체 도둑이 없었다. 이 고사는 진태구의 명성과 함께 널리 처져나갔고 이후부터는 도둑을 ´양상군자´라고 부르게 되었고 때로는 쥐를 가리키기도 한다.

언과기실(言過其實)

실제보다 말이 더 앞선다는 뜻. 제갈량이 마속을 높이 평가하자, 이에 대해 유비가 ´그는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나 실제로는 대단한 게 없으므로 그를 높이 기용하지 말아라´고 충고하였다. 제갈량은 마속을 죽일 때 이 글귀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언출위론 하필 성문(言出爲論 下筆成文)

말을 하면 경론이고 붓만 들면 명문이라는 뜻. 건안문단의 일인자로 꼽히는 조식에 대한 평이다.
오관육참(五關六斬) : 다섯 관문에서 여섯 명을 벤다는 뜻. 관우가 원소 밑에 있던 유비를 만나기 위해 그를 가로막는 다섯 관문의 장수 여섯을 베었다. 그의 충절을 기리는 고사성어. 참고) 동령 – 공수 낙양 – 한복, 맹탄 기수 – 변희 형 양 – 왕식 활주 – 진기 유) 오관참장(五關斬將)

우도할계(牛刀割鷄)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 동탁이 사수관을 지킬 장수를 뽑을 때 여포를 보내려 하자, 화웅이 여포를 소 잡는 칼, 손견을 닭에 비유하며 자신의 출전을 요청하였다. 유)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원문사극(轅門射戟)

여포가 원문에서 150보 거리에 놓아둔 화극의 곁가지를 화살로 쏘아 맞춘 일. 이로써 교전을 앞두던 원술의 부장 기령과 유비는 화해를 하게 되었다.

육적회귤(陸績懷橘)

오의 육적이 원술의 초청을 받아 잔치에 참가하였을 때, 모친을 생각하여 귤을 품어 달아났다는 고사.

육출기산, 구벌중원(六出祁山, 九伐中源)

기산에 여섯 번 나가고, 중원을 아홉 번 어우른다는 뜻 . 각각 제갈량과 강유가 북벌을 여섯번, 아홉번 시도한 것을 뜻한다.

읍참마속(揖斬馬謖)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베다. 가정 전투에서 패한 마속을, 군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참형에 처하면서 제갈량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유) 휘루참마 속(揮漏斬馬謖) 참고) 읍참마속을 일본식, 휘루참마 속을 중국식이라고도 한다.

일룡분이호(一龍分二虎)

<한 마리의 용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갈라놓다> 이 이야기는 유비와 장비의 고향인 탁주에서 그 지방의 토박이 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탁주성 외곽의 도장(桃莊)이라는 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장비는, 원래 돼지고기를 취급하는 식육 해체업자(도살장)로, 천하의 호걸과 교제하기를 좋아하여 언제나 한 덩어리의 고기를, 문 앞에 낡은 우물 속에 넣어두고, 천근이나 나가는 커다란 돌로 덮어놓고 돌에다가 <이 덮개를 여는 사람은, 속에 있는 고기를 가져가도 좋다. 돈은 필요 없음.>이라고 써 놓아다. 어느 날, 불그레한 얼굴의 남자가, 수레를 끌고 지나가다가 돌에 쓰여있는 글을 읽어보더니 곧 덮개를 열고 고기를 꺼내어 가지고 유유히 성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장비는 그 이야기를 듣더니, 얼른 곡물 시장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다. 과연 불그레한 얼굴을 한 몸집이 큰 남자가 녹두를 팔고 있었다. 장비는 그 앞에 서서 갑자기 녹두를 손에 쥐고, 손 안에서 부수어 가루를 내 보였다. 장비의 이런 도발적인 행동은 녹두장수인 남자의 화를 돋우어, 이내 말다툼을 하던 끝에 서로 치고받는 싸움을 하게 되었는데, 양쪽이 다 천근을 들어 올리는 힘이 센 장사여서 승부가 나지를 않았다. 이때에 나타난 것이 짚신장수, 그의 몸집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단정한 용모에 양쪽 귀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다. 두 사람의 사이를 가르고 들어온 그는 두 사람의 팔을 붙잡고 들어 올리며, <사나이는 무릇 나라를 위해 힘을 써야만 하는 법, 어찌하여 그대들은 이렇듯 작은 일에 분개하는가>하고 말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주위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짚신장수에게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두 사람은 크게 감동하고, 세 사람은 서로 공수(拱手-중국식 절의 하나로 공경의 예를 표하기 위하여 두 손을 마주 잡음)의 예를 올리고, 서로의 이름을 밝혔다. 짚신장수는 유비, 불그레한 얼굴을 한 커다란 몸집의 남자는 관우였다. 관우는 산서(山西) 사람으로 의리로 인하여 그 지방 토박이인 악당을 죽이고 뛰쳐나온 지 6년, 이때에 탁주로 녹두를 팔러 왔던 참이었다. 세 사람은 싸움과 중재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한 마리의 용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갈라놓다>라고 하는 말로 전하고 있다.

절영지회(折纓之會)

갓끈을 끊는 연회라는 뜻. 옛 고사에서 비롯됨. 이유가 이고사를 예로 들어 동탁에게 간언 하길 초선을 여포에게 내리면 여포의 충심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진복론천(秦宓論天)

촉의 진복이 오의 사신 장온과 하늘에 대해 논한 일. 여기서 장온은 진복의 논리 정연한 말과 해박한 지식에 감복하였다고 한다.

창서칭상(倉舒秤象)

조조의 아들 창서가 오에서 보내온 코끼리의 무게를 잰 고사를 말한다. 참고) 조창서는 이름이 충이고 창서는 그의 자이다. 조조가 그의 아들 중 가장 총애할 만큼 재주가 남달랐지만,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빛을 보지 못하였다.

청경우독(淸耕雨讀)

맑을 땐 밭을 갈고 비가 올 땐 책을 읽는다. 제갈량이 융중에서 이런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천계일봉(千鷄一鳳)

닭 천 마리 중에 봉황이 한 마리가 있다는 뜻. 황건적 장수인 절천야차 하만이 조조 군영을 농락하며 등장하자, 조홍이 이렇게 외치며 그와 맞섰다.

칠종칠금(七縱七擒)

일곱 번 잡고 일곱번 풀어준다는 뜻. 제갈량이 남정을 떠나 남만왕 맹획과 싸워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풀어준 후에 그의 진정한 항복을 얻어냈다.

침불안석, 식불감미(寢不安席, 食不感味)

누워도 자리가 편치 않고,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 제갈량의 출사표에 나오는 말로, 위로 강대한 적을 둔 그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탄금주적(彈琴走賊)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낸다는 뜻. 제갈량이 가정 전에서 패한 후 서성에서 사마의의 10만 대군과 맞설 때, 단 3천 병력으로 적을 막아내지 못함을 알고 거문고 울림으로 손쉽게 적을 쫓아냈다. 참고) 이때 사용된 계책이 공성지계이다.

투서기기(投鼠忌器)

쥐를 잡다가 독을 깬다는 뜻. 허전의 사냥에서 조조의 방자한 행동을 목격한 관우가 칼을 들어 그를 베려할 때, 유비가 가만히 그를 만류하며 이 말을 하였다.

파죽지세(破竹之勢)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 진의 장수 호분이 두예에게 차근히 오 정벌을 풀어나갈 것을 권유하자, 두예는 이렇게 말하며 그의 권유를 거절하였다.

할수기포(割鬚棄袍)

수염을 자르고 도포를 버린다는 뜻. 동관에서 마초와 맞닥뜨린 조조가 그에게 패하여 도망갈 때, ´비단 도포를 입은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도포를 버리고, ´수염이 긴 자가 조조다!´라는 말에 수염을 잘랐다고 한다.

호부견자(虎父犬子) 

호랑이 아들에 개 아들이라는 말로, 촉을 차지하여 나라를 세운 유비에 비하여 그 나라를 주색으로 망쳐버린 우매한 아들 유선을 비교한다.

화병(畵餠)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하다´ 실력 없이 명성만 화려한 자를 이렇게 불렀다.> 위제 조비는 위왕 조조의 법치주의를 계승하여 획기적인 ´구품관인법´을 만들었다. 관리등용의 기준을 향론, 즉 후한 말 이래로 인물평론에 의존하고 있던 것을 개선한 것이다. 당시 선비들 사이에는 말재주를 부리거나 화려한 언행만을 좋아하는 무리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소위 여론을 의식한 행동만이 만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적인 청담을 선구적으로 이끈 그룹들은 사총(四聰), 팔달(八達)이라 칭하고 무리를 지어 명성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다행히 당시는 유능하고 착실한 인물을 평가하는 조조시대의 풍조가 약간은 남아 있었다. 조비는 유능하고 착실한 인물들을 좋아했고 명성에 의존하는 자들을 극히 미워했으며 학문도 높고 덕행으로도 손꼽히는 노육(盧毓)을 이부상서로 기용했었다. 그에게 ´그대와 같은 자를 모아라´라고 명령하고 특히 명성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는 인물의 등용을 피하도록 지시하면서 말했다. ˝관리임용을 할 때는 명성으로 판단하여 채용해서는 안된다. 명성은 마치 땅에 그린 떡과 같아서 쓸모가 없다.˝ 노육은 이렇게 해서 우선 고과법(考課法)을 만들고 재능보다도 덕행을 중시하여 관원을 임명했다. ´화병´이란 말은 이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그림으로 그린 떡이니 먹을 수 없다. 따라서 실제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의 대명사처럼 쓰이게 되었다. 실질을 숭상했던 조조가문의 특성이 엿보이는 고사다.

홍문연회(鴻門燕會)

유비와 조조가 영웅에 대하여 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관우와 장비가 들이닥치면서 ´칼춤이라도 추어보이기 위해 달려왔습니다´라고 하자, 조조는 그들의 충심에 감복하면서, ´이곳은 홍문의 연회가 아니니 칼을 들 필요는 없을 것이오´라고 답하였다. 참고) 홍문연회란 항우가 모사 범증의 말에 따라 홍문이라는 곳에서 유방을 죽이려 했던 일을 말한다. 범증은 항장이라는 장수를 시켜 칼춤을 추다가 은밀히 유방을 죽이도록 하였는데, 이를 알아챈 항백이라는 자가 같이 칼을 뽑고 춤을 추면서 항장의 행동을 저지하였다. 곧 유방의 장수인 번쾌도 칼을 뽑아 들고뛰어들어 항장을 막았고, 낌새를 알아차린 유방은 곧 장 자리를 떠서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유비의 입촉에서도 인용된다.


삼국지 고사성어가 주는 지혜

삼국지에 나온 사자성어가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심성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삼국지 사자성어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하고 잘 알려진 것이 있는 가 하면, 또 생소한 사자성어도 있을 것이다. 비록 아주 오래된 옛이야기에서 유래된 비유적인 내용이지만 함축된 깊고 신묘한 진리는 지금 각박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줍니다.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사자성어는 곱씹어 볼수록 지혜롭지 않는 것이 없다.

인간세상이 각박한 것은 삼국지 시대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겠지만, 그래도 삼국지 사자성어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새롭게 한다면 이 또한 지혜로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error: 상식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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