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가 바로 순댓국입니다.
순대국 또는 순댓국이라는 이 음식은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이 점심이나 저녁이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밥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다 보니 얼마 전까지도 5천 원~6천 원 하던 순대국밥이 이제는 8천 원은 물론이고 9천 원까지도 가격이 올랐습니다.
순댓국의 역사에 관한 쓸데 없는 고찰
오늘 ‘상식은 권력이다’에서는 순대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제목이 순댓국의 역사에 관한 쓸데없는 고찰입니다. 세상은 참 고민할 것도 많고 알고 싶은 것도 많은데, 기껏해야 순댓국 한 그릇인데 뭘 그리 궁금했을까요? 그래서 어쩌면 혹자들에게는 쓸데 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기에, 순댓국의 역사에 관한 쓸데없는 고찰이라 적었습니다. 순댓국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가 없을 것 같으면 백스페이스 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관해 알고 먹으면 더 맛있습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표기에 있어 헷갈려하고 순댓국을 파는 많은 가게들도 틀리게 표기한 곳이 많습니다.
순대국인가? 순대국인가?
정답은 순댓국이 올바른 표기입니다.
순대+국 의 합성명사입니다.
[순대꾹],[순댇꾹] 등으로 발음을 하는 것으로 보아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순대에는 받침이 없어 사이시옷을 표기할 수 있다
이 세가지 조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사이시옷을 표기하는 것이 올바른 표기라고 합니다.
- 상식은 권력이다
왜, 순댓국에 대해 그리 알려고 하는가?
그냥 순댓국이나 한 그릇 먹으면 되는 것을 뭘 그리 궁금할까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먹는 음식을 알고 먹으면 더 재밌고 맛이 있습니다.
순댓국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어렸을 적에 또는 학생 시절, 직장인 초기에 주머니에 돈이 별로 없을 때 그냥 부담 없이 순댓국 한 그릇 값은 매우 저렴했습니다. 사실 순대 몇 개 넣고 잡고기와 머리고기에 국물을 팍 우려내서 뜨끈뜨끈하게 배를 채우는 데는 순댓국만 한 게 없습니다. 순댓국을 먹을 때는 반찬도 많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맛있는 깍두기 한 사발, 또는 푹 익은 김치 한 그릇이면 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는 순댓국도 그냥 순대 국밥이 아니라 ‘특’이라는 전치사가 붙으면서 이름도 고급지게 특순댓국이라는 명칭으로 천 원~이천 원 더 받고 그냥 순댓국은 꼴랑 순대 몇 덩어리만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순댓국을 먹으면 들어간 순대가 몇 개가 있는지 쉬어봤더니, 대략 8개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시켜 먹는 순댓국에는 보통 8개 정도의 순대가 있습니다. 혹시 가시는 순댓국 집에 순대 알갱이가 8개 이상 있으면 혜자입니다. 그러니까 8천 원짜리 순대 국밥 국물안에 있는 순대가 1개가 천원 꼴입니다. 물론 국물과 몇 개의 고깃덩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가격이 올라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순대의 역사, 그것이 알고 싶다
우리가 이렇게 먹는 순댓국은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먹었는가 하는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순대조리법이 처음으로 소개된 책이 있다고 합니다. 순대의 역사를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궁금하지 않나요? 순대를 소개할 때 대부분 ‘제민요술’을 언급한다고 합니다. ‘제민요술’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서라고 합니다. 이 책은 산둥지역을 다스리던 어느 태수가 편찬한 책이라는데 이게 참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아주 옛날에 국경선이 모호한 때 산둥지역은 우리 한반도와 무척 가까운 곳인데 이 지역의 음식이 한반도의 음식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한다고 전문가들은 썰을 풉니다. 바로 이 책 ‘제민요술’에서 양피 순대와 양고기 순대 그리고 선지순댓국에 대한 조리법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요동도 어쩌면 한반도에 부속한 우리나라의 영토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가 줄곧 먹어대는 순댓국이지만 막상 우리나라에는 순댓국에 대한 기록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순댓국이라는 것이 보기만 해도 팔팔 끓는 국물에 순대를 몇 개 띄운 것인데 이게 어디 조선 시대 양반이나 고려시대 때 잘 사는 사대부가 먹던 음식은 아니었을 것 같고, 그냥 서민들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순대 몇 개에 국물을 팍 우려내서 배를 채우는 데는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 입장에서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서 순대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개(犬) 순대로 조선중기인 1670년경쯤 이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돼지나 소도 아니고 ‘개’의 순대라고 말하니 이 또한 황당하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중차대한 시기에 ‘개’나 ‘돼지’나 무슨 상관이 있었겠나요? 사실 조선 시대 때에는 배 고프게 사는 게 일상이었고, 오죽하면 똥꾸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을 했겠습니까?
여기서 잠깐 사족을 달면, 왜 가난하면 똥꾸멍이 찢어지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선시대에 일반 서민들이 먹을 것이 없다 보니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일단 배를 채울 것을 찾습니다. 그래서 캐 먹은 것이 나무뿌리입니다. 이게 일단 먹을만하다고 해서 먹고 주린 배를 채우지만 이게 똥으로 소화가 안됩니다. 나무뿌리가 강력한 섬유질이다 보니 창자에서 꽉 막혀있다가 똥으로 나올 때는 아주 딱딱하게 굳어서 똥이 쇠막대기 같이 삐져나옵니다. 이때 바로 똥구멍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못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똥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음식 이야기를 하니 이상하지만 그래도 글의 초심을 잊지 않고 다시 순대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1670년 경 ‘음식디미방’ 또는 ‘규곤시의방’이라 불리는 책에 정부인 안동 장 씨가 쓴 조리서를 보면 선지를 넣지 않은 ‘개’ 의창자로 만든 개순대가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후 1600년대 말이 지나면서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방문에 비로소 ‘소’의 창자로 만든 순대가 나옵니다. 그러다가 1809년에 조선시대말에 접어들면서 여성생활백과인 규합총서에 선지를 넣지 않은 소창자로 만든 순대를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이전에 한반도에서는 순대를 먹지 않았을까?
도대체 한반도에서는 동물의 창자에 음식재료를 넣어서 누가 처음에 이것을 먹었나 하는 의문이 듭니다. 고려시대 때도 순대에 관한 기록도 없고 이러한 음식을 소개한 자료도 없습니다. 특히 고려 시대 때는 불교를 중시하는 국가였기에 양과 돼지고기를 삼가했다고 하는데 개나 소나 돼지의 창자에 음식을 넣어서 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것 같습니다. 동물의 배를 갈라서 창자를 빼서 여기에다 음식재료를 넣고 국이나 다른 찌개를 만들어 먹는다고 할 때 비릿하고 이상한 특유의 잡내를 없애고 과연 음식 본연의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는 방법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때 무슨 다시다나 미원이 있었을 리도 없고 동물의 창자를 먹는다고 생각은 아마도 안 했으리라 봅니다. 더군다나 창자는 동물의 똥이나 오염 물질로 가득했을 텐데 아무리 씻어내도 잡내가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고, 이것을 끓여서 먹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순댓국은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돼지 순대 조리법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하는 궁금함이 더해집니다. 이러한 궁금증을 더해서 알아보니 1830년대에 나온 농업기술서인 ‘농정회요’라는 책에서 ‘도저장’이라는 음식이 소개됩니다. ‘도’라는 글씨를 보니 벌써 이게 돼지와 팍 연결이 됩니다. 이 책을 보면 돼지 창자를 말끔하게 씻어 피를 빼고 여기에 참기름과 콩나물 그리고 후추 등 갖가지 재료를 섞은 후에 돼지 창자 속에 이러한 여러 가지 음식재료를 넣고 새지 않도록 양쪽 끝을 묶은 후에 팍 싫어서 익힌 후 썰어 초장에 찍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거참, 갑자기 어마어마하고 대단한 발견입니다.
돼지 창자에다가 온갖 음식을 넣고 쪄서 잘라 먹었다는 게 이게 바로 돼지 순대의 발견입니다. 한 가지 골 때리는 것은 그 당시 돼지창자를 씻을 때 너무 냄새가 나니, 그때로서는 상당하게 비싼 설탕을 써서 잡내를 없애도록 했다는데 아주 신박한 발상입니다. 사실 설탕은 지금은 슈퍼에서 우리가 싸게 살 수 있지만, 설탕은 조선시대 때 아주 귀한 재료입니다. 일반 백성들이 설탕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데, 그러고 보면 그 당시 비싼 설탕을 이용해서 돼지의 잡내를 없애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상당한 미식가의 조리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미식가들은 어떻게 하면 별미를 먹어볼까 연구하고 맛을 보는데, 인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러고보면 조선시대 돼지 순대 조리법으로 보면 상당히 고급진 음식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잠잠하다가 19세기말에 쓰인 요리책 ‘시의전서’라는 책에 한글로 야지순대조리법이 등장합니다. 한글로 조리법이 쓰여졌다는 것이 그만큼 순대에 관해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전파가 된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조선시대 때에는 모두 한자가 주로 많이 쓰여졌는데, 한글로 돼지 순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면 사뭇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조리법을 보면 돼지 새끼를 잡은 뒤에 창자를 끄집어 내서 일단 깨끗이 씻은 후에 각종 음식 재료를 쳐 넣습니다. 들어가는 것들은 숙주, 미나리, 무 등을 비롯해서 배추김치에 두부, 파, 생강, 후춧가루, 마늘, 깨소금, 고춧가루 등입니다. 이쯤 되니 아주 제법 현대식 레시피와 비슷한 느낌인데 이것을 한글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이제는 보통 조선 백성들도 돼지 순대 맛을 알았다고 할까요?
이후 순댓국에 대한 기록은 더 없습니다. 그러다가 역사는 흐르고 흘러서 일제 강점기 1924년에 이용기가 쓴 국내 최초의 컬러판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 요리제법’에 순대 대신 내장만 넣어 끓인 국을 순댓국으로 소개합니다. 이것이 근대에 있어 우리에게 알려진 또 하나의 순댓국의 역사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1931년 동아일보 신문기사에 순댓국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여기에서는 돼지 삶은 물에 기름을 건지고 우거지와 내장을 넣고 된장이나 무, 우거지, 콩나물을 넣고 소고기까지 짬뽕으로 넣어 끓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게 순수한 돼지 순댓국이라 하기보다는 그냥 고기국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우리가 먹는 순댓국은 언제부터인가?
지금과 같이 순댓국에 순대를 넣어 먹는 국밥은 대략 1945년 해방 이후로 추정된다는 썰이 등장합니다. 1948년에 손정규라는 사람이 지금의 순댓국과 가장 유사한 조리법을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돼지 창자 안팎을 소금물에 팍팍 씻은 후에 돼지고기를 잘게 썰어 놓고 여기에 각종 양념을 더했다고 합니다. 배추김치, 숙주, 만두소를 섞어서 돼지 창자에 다져 놓고 돼지고기와 선지와 찹쌀가루나 녹말가루를 풀어서 국으로 푹 삶는다고 합니다. 이후에 순대는 건져서 썰어서 별도로 또 국에 넣거나 또는 초장에 찍어서 먹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게 지금 우리가 먹는 순댓국과 가장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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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은 배 고프다! 순댓국 한 그릇의 행복
순댓국은 배 고픈 서민 음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돼지 창자가 그리 비싼 음식 재료는 아니었고 돼지 부속품 같이 싼 음식재료에 갖가지 양념을 더해서 푹 끓여 먹은 것입니다. 알고 보면 국이라는 음식이 얼마 되지 않는 재료로 많은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것이고, 작은 분량으로 푹 우려먹으면 열 명도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살기가 팍팍해지면서 순댓국도 이제는 만원 가까이 올랐습니다.
보통 순댓국은 지역과 먹는 가게에 따라 아직 저렴하고 맛있는 곳도 있지만, 어느새 시내 중심가나 또는 번화한 장소에서는 순댓국 가격이 9천 원에서 1만 원까지 갑니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그래도 배가 고픈 서민들은 오늘도 순댓국을 저녁으로 먹으면서 하루를 마감하고 작은 행복을 느낍니다.
순댓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이면 하루가 행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순댓국 한 그릇 먹는 것도 부담되는 세상이 되어 가네요.
오늘 같이 겨울의 끝 자락에서 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저녁에는 따끈한 순댓국이 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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