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三足烏)는 고구려의 상징이다. 한때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강한 군사력과 함께 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강대국이었고, 고구려는 삼족오를 강력한 정체성으로 삼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삼족오를 뜻하는 까마귀가 우리나라에서는 ‘재수가 없는 새’로 받아들여졌고, 고구려가 망하면서 삼족오는 한반도에서 온 데 간데 없어졌다. 그렇게 한반도에서 사라진 삼족오가 일본에서는 매우 신성시되고 지금 일본축구협회는 삼족오를 자신들의 엠블럼으로 자랑스럽게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삼족오가 일본에서는 많이 사용되는지 상식적으로 알아보자.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三足烏)가 일본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유
중국과 신라의 입장에 볼 때 고구려는 매우 불편한 존재였기에 역사에서 지워야 했고, 고구려는 상징하는 새인 삼족오(三足烏) 역시 없애야 했다. 따라서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는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이 땅에서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언제부터인지 일본에서는 삼족오가 많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삼족오(三足烏)란?
삼족오는 ‘세 발 달린 까마귀’로, 태양과 관련된 신화적 존재이다.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데 특히 태양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구려에서 삼족오는 국조(國鳥)로 숭상되었으며, 많은 벽화나 금속 공예에서도 삼족오 문양이 확인된다. 한편 일본에서는 ‘야타가라스(八咫烏, やたがらす)’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신성한 존재로 받아들였다.
삼족오는 발이 셋 달린 까마귀다. 고구려의 쌍영총, 각저총, 천왕지신총 등 많은 고분 벽화에는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주로 태양을 상징하는 원(員) 안에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까마귀는 양(陽)을 의미하는 태양에 살고 있으므로, 발의 수도 양의 숫자인 3개로 설정한 것이라고 알려졌다. 한편 ‘까마귀=태양’이라는 설정은 사람이 죽으면 까마귀가 그 영혼을 하늘나라에 데려간다는 신화적 요소도 있다.
고구려는 자신들이 ‘태양의 후예’라고 자랑스럽게 인식을 했고, 원형의 태양 안에 들어있는 삼족오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던 것이다.
일본에서 삼족오(八咫烏, 야타가라스) 사용 사례
① 일본 신화 속 삼족오: 야타가라스(八咫烏)
일본 신화에서 삼족오는 ‘야타가라스(八咫烏)’라고 불리며, 일본의 초대 천황인 진무(神武) 천황을 도운 신조(神鳥)로 등장한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따르면, 진무 천황이 야마토 지역(현재의 나라현)으로 동진할 때, 길을 안내한 신조(神鳥)가 바로 ‘야타가라스’이다. 이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태양신)가 보낸 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삼족오는 일본 신화에서 ‘천황을 돕는 신성한 존재’로 여겨왔다. 이러한 배경을 이유로 일본에서는 삼족오를 천황가(왕실)의 상징이자 신의 인도자로 신성시하고 있다.
② 일본 왕실 및 신사에서 삼족오 사용
삼족오는 일본 왕실 및 신토(神道) 신앙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왕실이 숭배하는 구마노 홍태신(熊野権現, 쿠마노 곤겐)과도 관련이 있다. 지금도 일본 구마노(熊野) 지역의 구마노 신사(熊野神社)에서는 삼족오가 신조(神鳥)로 여겨지며, 신사의 문양에도 등장한다.
③ 일본축구협회(JFA)의 상징이 삼족오
일본축구협회(JFA, Japan Football Association)는 삼족오(야타가라스)를 엠블럼으로 사용하고 있다. 1931년 일본 축구협회가 공식 엠블럼을 제작할 때, 구마노 신사의 신조(神鳥)인 야타가라스를 채택하였기 때문이다.

야타가라스는 일본 신화에서 ‘천황을 인도한 길잡이’였기 때문에, 일본 축구가 세계로 나아가는 ‘선도자’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 한다. 한편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 강력한 힘과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즉, 일본축구협회가 삼족오를 사용한 이유는 신화적 배경(천황을 인도한 신성한 새), 승리와 강함의 상징(태양의 새), 일본 전통과 연결(구마노 신사와 관련)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일본에서 삼족오가 역사서에 등장한 때를 보면 알 수 있다
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했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서에서 삼족오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이다. 『고사기(古事記)』는 712년에 편찬된 일본 최고의 문헌으로 오오노야야스마로(태안만여:太安萬侶)가 천황에게 바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는 도네리 친왕이 덴무 천황의 명을 받아 편찬하기 시작하여 720년(요로 4년)에 완성된 것이다.
한 마디로 고구려가 망하고 한참이 지나서 일본에서 삼족오가 역사서에 처음 기록된 것이 바로 서기 700년이 넘어서이다. 그러니까 일본에서 삼족오가 사용된 것은 고구려가 패망하고 고구려 세력들이 일본의 지배자로 등장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는 일본이 삼족오를 사용하게 된 것이 바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한반도를 통해 삼족오 신앙이 전파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삼족오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일본과 축구를 할 때 자세히 보면 일본 축구선수의 유니폼 상의에 삼족오(三足烏) 엠블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역사를 모르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 축구선수가 당당하게 삼족오가 그려진 옷을 입고 뛰는 것을 보고 그냥 의아스럽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적이고 정신적인 나라였던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가 일본에서 당당하게 사용되는 현실은 우리의 역사를 스스로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삼족오에 대한 브랜드 지적재산권이 고구려에 있다고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일본에 빼앗긴 꼴이다. 삼족오를 상징하는 새, 까마귀는 중국이나 신라에서는 고구려를 연상하게 하였기에 아주 대표적 ‘흉조'(凶鳥)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길조'(吉鳥)로 여겨지고 있다. 삼족오가 고구려의 대표적인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에서 오히려 더 널리 사용된다니 참으로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이라도 삼족오를 다시 찾아와야 한다.
상식은 권력이다 nBo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