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 자락의 시간이다. 입춘(入春)은 지났지만 따스한 봄의 기운보다는 차가운 겨울바람만이 창가를 휘감고 있다. 그 바람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새벽빛을 바라본다. 이 고요한 시간,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이 순간에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 그러는 순간 누군가가 문득 그립다. 그리움이란 참으로 이상한 감정이다. 때로는 누군가를 향한 선명한 생각이지만, 때로는 그저 막연한 허성(虛像)처럼 형체도 없이 마음 한켠을 채우고 있다. 오늘따라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 감정은 후자에 가깝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만 알 뿐,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말이다.
부르는 이가 없어도 누군가 문득 그립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은 과거의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의 첫사랑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내 곁을 지켜주던 할머니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이미 잊혀진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일 수도 있다. 기억 속에 묻혀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겨울밤의 고독 속에서 조용히 깨어나 나를 감싸안는다. 그리움은 마치 오래된 사진 속의 인물처럼, 선명하지 않지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창가에 앉아 차가운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본다. 희미하게 맺히는 수증기 위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그리다 멈춘다. 무엇을 그리려 했던 걸까?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아득하다. 마치 오래전 누군가와 나누었던 약속처럼, 이제는 그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추억처럼. 그리움이란, 이렇게 불확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한 사람, 한 순간을 그리는 것이 아닌, 그리움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쓸쓸함이 방 안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고독이 불편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진다.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는 것 같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통해 나는 역설적으로 나 자신과 더 가까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 사랑하게 될 모든 순간들. 그것들은 마치 끝없는 겨울밤의 별들처럼 내 마음속에 반짝이고 있다. 누군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 그리움을 통해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하얗게 빛나는 눈송이들처럼, 내 마음속의 그리움도 고요히 쌓여간다. 그것은 아픔이면서도 동시에 위로가 된다.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곧 내가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내 존재의 연료가 되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 따뜻한 기억들이 나를 감싸안는다. 그리움이란 결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 나를 사랑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리움 속에서 나를 찾아간다. 잊고 있던 나의 감정들을,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꺼내어보며, 그리움을 통해 더 깊이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된다.
눈이 내리는 이 겨울밤, 나는 그리움과 함께한다. 그리움은 나에게 부드러운 위로가 되며, 잊혀진 미소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누군가와의 연결이 끊어진 듯한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리움을 통해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 그리움이란, 결국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 겨울밤, 창가에 앉아 눈송이들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그리움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움이 나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고, 내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는다는 사실을. 이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리움이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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