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러기 아빠의 죽음

어느 기러기 아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 이야기는 실화에 바탕하고 있으며, 많은 기러기 아빠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수 있기에 소설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어느 기러기 아빠의 죽음

기러기 아빠라도 좋다

작년 8월, 무더위가 거의 끝나갈 때 친한 후배에게 저녁을 먹자고 전화를 했다.

‘오늘 저녁에 오랜만에 소주나 한잔 할까?’
‘선배님, 그런데 제가 요새 좀 몸이 안 좋네요’
‘아무래도 술을 다음에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는 평소에 술을 좋아했고, 저녁을 먹자고 하면 무조건 달려왔던 친구라 이러한 대답은 의외였다.

‘어디 많이 아픈가?’
‘아니 제가 먹는 것도 좀 힘들고, 기운이 없네요’
‘봐서 다음에 뵙죠’

L과의 인연

내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 후배는 L이라고 칭 합니다.

L과 알고 지낸지가 벌써 25년이 되었는데, 그는 나 보고 선배님이라고 하지만 나이로는 내가 한 살 더 위였다. 그리고 직장은 내가 그 보다 3년 정도 먼저 들어왔다.

그는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직장에 들어온 늦깎이 회사원이었다.
그는 배운 것도 많고 나이도 있어서 L은 신입직원때부터 선배들과 트러블이 많았다.
L은 배치된 곳에서 선배와 업무관계로 말다툼이나 갈등이 있어 사실상 많은 이들이 그 친구와 일을 같이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1997년 책임자급으로 처음 승진하면서 같이 일 할 인원들을 인사부로부터 배정받게 되었다.
인사부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L을 그쪽으로 보낼테니 같이 일하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난색을 표하고, 그 친구말고 다른 사람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처음 책임자급을 맡은 나로서는 인사부의 거의 반강압적인 직원 배정에 꼼짝 못 하고 결국 그 친구를 바로 내 밑 두고 일을 같이 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팀이 구성되면서 그 친구 L의 위세는 역시 듣던대로였다.

‘이렇게 하면 안 되죠’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

그는 항상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하여 팀 구성원들과 다소 불화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업무 스타일을 찬찬히 지켜보면서 L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L이 말하는 게 아주 터무니가 없거나 또는 엉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L은 말하는 내용이 타당했으나, 그 표현이 다소 서툴고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대 형성에 있어 부족한 면이 있었지만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서는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게 일을 맡겨 보고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개선점을 제시하는 등의 적극적인 태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L도 다른 선배들같이 무조건 자신의 의견에 반대만 했던 사람들과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원만한 스타일로 끌어주는 나에게 조금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중요한 프로젝트가 잘 끝나고 회식을 가졌다.
아마도 1998년 눈이 엄청 내리던 겨울로 기억된다.
L은 만취가 되어서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 다른 선배들에게는 건방져 보였고, 문제가 있었던 놈이지만 내가 볼 때는 별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가 슬쩍 보였다.
내가 선배이고 한 살 많지만, 그는 언제부터인지 나에게는 아주 깍듯하게 굴기 시작했다.
조금 일을 하다 보니 인사부에서 나에게 그와 별 문제가 없냐고 걱정 겸 상담을 했지만 나는 그와 일 하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사실 일의 방식에 있어 선배들이 알량하게 조금 업무를 조금 먼저 안다고 후배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하거나 또는 후배가 제시한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게 그때는 관행적으로 있기도 했던 때이다. 1990년대 후반이니까, 민주화가 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대이기에 선배는 하늘이며 무조건 따라야 했던 것은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도 이와 같았던 시기였다.

L, 기러기 아빠가 되다.

1999년인가? 2000년 전이라 여겨지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는 들뜬 얼굴로 나와 저녁을 먹자고 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아, 드디어 됐습니다.’
‘우리 애들이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게 되었어요’
‘뭐, 이민이라도 가는 건가?’
‘제 큰 애와 둘째가 미국 뉴저지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 잘 된 일이죠’

L은 저녁 식사를 가기도 전에 업무시간이지만 자신의 아들들이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을 떠들었다.
사실 알고 보면 L은 금수저였다.
이미  30대 이른 나이에 일산에서 40평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었고, 재산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그는 집안의 소개로 중매로 와이프와 결혼도 잘한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날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는 너무 기쁜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연신 마시고 나에게도 건넸다.

‘선배님, 우리 애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게 되어 전 정말 좋습니다.’

나는 내심 그가 부러웠다.
L은 부잣집 출신이라 자식들도 아무 부담 없이 이렇게 미국에서 공부시키는데 나는 학원비도 쪼들리는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 궁금한 게 있어 물어봤다.

‘그런데 애들이 어린데, 미국에서 누가 애들을 돌봐주는가?’

‘선배님, 애들만 가는 게 아니라 와이프가 함께 간답니다.’
‘그러니까, 뭐 애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당신이 기러기 아빠가 되는 건가?’

‘아고, 기러기 아빠면 어떻습니까?’
‘집사람이 미국에 함께 가서 애들을 돌봐준다니, 다행이죠.’

이날 L은 만취했다.
코가 삐뚤어지게 먹었는지 다음 날 후배 L은 지각까지 했다.
다음 날도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흥겨워했다.
마치 자신이 박사과정을 마쳤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던지, 아들들이 둘 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다닌다는 사실에 아주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뭐, 그때만 해도 아주 그의 이러한 기러기 아빠 생활이 아주 잘 된 일로 나는 생각했다.
L과 같이 근무를 3년 정도하고 2000년 초반이 되면서, 다시 인사발령이 각기 다른 부서로 나면서 가끔 얼굴을 보는 상황이 되었다.

놈은 때로 술 생각이 난다던지 또는 고민이나 상담할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았다.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지 벌써 10년이 다 지나갔던 때인가, 2010년쯤으로 생각된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나는 그와 유대관계가 계속되어 일을 떠나서 같이 술 한잔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놈은 내가 좋았는지 때로는 좋은 일도, 그리고 고민도 털어놓았다.

ATM 기기가 된 기러기 아빠

어느 날, 조금은 우울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선배님, 시간 되시면 저녁 하시죠’

나는 특별한 약속도 없던 터라 어디 가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고 했다.
술을 한잔 하는데, L은 좀처럼 말이 없었다.
얼굴을 보니 걱정이 있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야, 요새 무슨 일이 있냐?’
‘아뇨, 그냥 기러기 아빠 생활만 10년 하다 보니 정말 힘들기는 하네요.’
‘뭐 집에 가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고, 집에 가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서 술 먹고 집에 갈 때도 많고, 이렇게 그냥 사네요.’
‘그리고 일산에 있던 아파트도 얼마 전에 팔았어요.’
‘미국에서 애들 학비도 내야 하고, 또 와이프가 미국에 집을 사자고 해서 집사람 명의로 조그마한 주택도 구입했는데, 그런데 그게 제 명의는 아니네요.’

‘아니, 그럼 자네는 어디서 기거를 하고 있나?’

‘사무실 가까운 곳에 빌라 원룸을 하나 얻어서 그냥 거기서 잠만 자요.’

조금은 황당한 이야기가 오갔다.
미국에 애들 보내 놓고 전 재산을 처분해서 지금은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꼴이다.
그리고 요새는 매달 천만 원 정도를 모아서 달러로 환전해서 미국에 보내는데, 정작 자신은 돈도 없고 대출도 많이 받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나는 그러한 L의 말을 듣고, 그냥 자네가 이제는 미국으로 들어가라는 권유를 했다.
그런데 L의 답변은 조금은 어두웠다.

‘선배님, 제가 미국에 들어가도 할 게 없어요.’
‘애들도 다 커서 학교 기숙사 생활하고, 미국에 집에 가도 같이 할 가족이 없어요.’


‘아니, 그럼 이 사람아 자네 와이프가 이제 국내로 돌아오면 되지 않겠는가?’

‘선배님, 집사람이 미국에 자기 명의로 집을 구해서 이제 아예 한국으로는 돌아올 생각도 없는 것 같아요.’
‘조만간, 서울에 한번 들린다고는 하는데 아주 오는 게 아니라 잠시 온다고 합니다.’
‘그때, 더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집사람은 이제 한국에서 안 산다고 하네요.’

답답하고 지루한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기러기 아빠의 생활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는 거의 10년 동안 혼자서 살았다.
어쨌든 그날 대화는 그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으로 그쳤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자네가 미국으로 가던지 아니면 자네 와이프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다시 살든지였는데 둘 다 아무 결론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기러기 아빠에게 와이프는 누구인가

얼마가 지나고 어느 날 집사람이 한국에 왔는데 같이 저녁을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와이프가 오랜만에 와서 기분이 좋다면서 선배님과 같이 소주 한잔 하는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마도 미국에 있는 와이프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인가보다.
그런데, L이 와이프를 데리고 와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날 어느 커피숍에 만나기로 했는데, 이상하게 L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저녁은 어렵고 그냥 커피만 한잔하고 가시죠.’
‘와이프가 같이 저녁 하는 게 부담스럽게 생각하네요.’

‘아, 그래 그러면 자네 편한 대로 하게나.’

나는 내심 L의 와이프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정작 나는 그의 와이프에 대해 이야기만 들었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다.
일단 커피숍에서 나는 L과 그의 와이프를 만났다.
L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와이프와 함께 하는 자리임에도, 무엇인가 불편한 기색이었다.
직장에서는 호기롭고 아주 적극적인 사람이 와이프 앞에서는 왠지 주눅이 푹 들어 있었다.

나는 L의 와이프를 처음 봤다.
중매로 결혼했다는 L의 와이프는 아주 도도한 모습이었고 미인이라면 미인과 같았다.
그러나 말은 다소 쌀쌀하게 느껴졌다.
나는 특별하게 길게 할 말은 없었고, 커피를 마시면서 덕담 겸 애들이 미국에서 잘 커서 좋으시겠다는 말로 끝맺음을 하고 자리를 먼저 일어섰다.
사실 그날 L은 와이프 자랑도 하고 미국의 애들이 큰 것에 대해서도 의기양양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무엇인가 잘못된 것 같았다.
다음 날, 나는 L을 사무실에서 만나 옥상에 올라가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그래, 그래도 와이프가 한국에 오니까 좋지?’
‘그냥,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해봐, 미국 생활 뭐 정리하면 되는 것이지.’
‘이제, 애들도 다 커서 학교 기숙사에 있다는데 와이프가 미국에 뭐 하러 더 있으려 있나?’

그러나 L은 담배를 깊게 쭉 빨고 하늘로 연기를 쫘악 내뿜으면서 말했다.

‘선배님, 집사람은 반대여요, 안 된다고 하네요.’
‘이 사람아, 안 되는 게 어디 있나?’
‘부부가 같이 산다는 게 당연한데, 자네는 벌써 10년이나 떨어져 살지 않았나?’
‘그래, 오랜만에 와이프가 왔는데 어찌 어젯밤에 사랑도 잘 나누었는가?’


나는 농담 겸 그래도 와이프와 같이 잘 수 있었는데 무슨 진척이 좀 있지 않을까 해서 물었다.


‘아고, 선배님, 와이프 하고 같이 잠 자본지도 10년입니다.’
‘이제는, 제가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뭐, 제가 미국에 갔을 때도 그랬고, 서울에 왔어도 같이 안 자요.’

그런 그의 대답을 들으니 내가 괜한 이야기를 했나 하고 미안해졌다.
‘아, 그런가? 난 부부니 당연히 같이 합방도 하고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을 줄 알았지…’

어째 그의 답변을 들으니 분위기가 쐐했다.

‘집사람이 차 사야 한다고, 5만 달러를 달라고 하는데요.’
‘당장 돈이 없어, 어디 또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네요.’
‘선배님도 아시겠지만, 미국은 차가 없으면 생활이 안 되잖아요.’

알고 보니 집사람은 L이 돈을 제때 못 보내주니 닦달을 하러 한국에 온 것 같았다.

‘거참, 조금 답답하네, 아니 자네가 무슨 ATM기도 아니고 무슨 돈을 그리 보내나?’
‘좀 알아봐, 정말 집사람이 거기서 어찌 사는지…’

L은 보기와는 달리 천성이 착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본래의 약한 자신을 감추려고 강한 척하고 직장에서도 세게 나갔던 것 같다.

미국에 사는 부인이 현모양처로 애들을 잘 돌봐주는데 자신이 의심을 해서는 안된다는 자기 철학이 나름대로 있어 보였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것이 아니라 많이 이상했다.

하지만 후배의 사생활이나 가정사에 관해 내가 많은 말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일이 있고 세월은 또 흘러만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L이 빌라 원룸을 전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제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서울 근교에 20평형대 신축 아파트를 하나 구해줬다고 한다. 형제 중 막내였던 L의 처지가 어렵다는 사실에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L은 모든 재산과 돈을 미국에 보내주고, 결국 형제들의 도움으로 작은 아파트를 하나 얻어서 살기 시작했다. L은 형제들의 도움으로 입주하게 된 새 아파트에서 집들이를 하자면서, 나를 불렀던 적도 있다. 그는 자신만의 좋은 생활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나는 2013년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그도 이후에 직장을 떠나게 되어 한동안 L과도 소식이 뜸하게 되었다.
그는 간간히 자신의 소식을 전하다가, 가끔 소주 한잔 하자면 천리를 마다하고 달려왔다.

어느새 세월도 많이 흘렀다.
2021년 겨울이 본격적으로 접어든 12월 조촐하게 L과 그리고 함께 다녔던 동료 지인들과 송년회를 가졌던 적이 있다.
L은 그때 자기 큰애와 둘째 애가 모두 의대를 졸업해서 이제는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게 되었다면서 자랑을 늘어놨다.
사람들은 모두 L을 부러워했다.
미국에서 아들 둘을 의사로 키웠다니 정말 자랑감이었다.
L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병원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을 보라고 보여줬다.
아들들이 미국에서 좋은 의대를 졸업해서, 이제는 의사도 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자네도 미국에 가서 살아야지.’
‘애들도 다 잘 키웠고, 성공했으니 가족들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는 나의 이러한 말에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가 계면쩍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아고, 선배님이 좋고 그런데 여기서 있을 때까지는 있어야죠.’
‘미국에 가면 제가 누구하고 술 먹을 사람도 없어요.’

나는 어쨌든 L이 벌써 20년이 넘게 혼자 살았다는 사실이 내심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송년 술자리니까 한해를 마감하면서 즐거운 자리가 되었는데, 나는 그날 만남이 그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그날 몰랐다.

어느 기러기 아빠의 죽음

작년 2022년 추석 다음 날 문자가 왔다.
L 본인이 부고를 당했다는 문자가 날라 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변고에 놀라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장례식장에는 L과 친한 친구 몇몇이 있었다.
나는 L의 사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가까운 친구 이야기로는 추석날 형제들이 연락을 했는데,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직접 집을 찾아갔는데 문이 잠겨서 소방서를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가니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냥 침대에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정확한 사인은 심근경색이라 했다.

추석날 막내 동생이 차례를 지내러 오지 않으니, 아마도 큰 형이 계속 연락을 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불길해서 찾아갔더니 이렇게 된 것이라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참 허탈했다.
아, 그래서 추석 때 내가 추석 잘 보내라고 문자를 보냈는데도 답신이 없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인생이 참 무상하다.
그는 열심히 혼자서 열심히 살았는데 그의 삶의 끝은 너무나 허전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L의 부인을 다시 만났다.

‘장지는 어디로 정하셨는지요?’
‘나중에 찾아가서 소주라도 한 잔 기울여주고 싶습니다’

L의 부인은 그의 장지는 이곳 한국에 없다고 했다.
L을 화장하여 유골만 미국으로 가지고 갈 것이라 했다.

그는 이제 죽어서 미국 땅을 가게 된 것이다.

L은 사실 기러기 아빠가 되는 순간부터 가족과 생이별을 한 것이었다.
무려 25년 동안 혼자서 살다 허망하게 죽은 것이다.

그에게는 자식도 부인도 없었다.
법적으로만 부부였고, 그가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큰아들은 자신의 장례식장에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혼자서 외로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면서 돈만 미국에 부쳐주고 정작 본인은 황폐한 삶을 살다가 쓸쓸하게 마감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뜨면서 L의 부인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아들이 의사이면 뭐 합니까? 정작에 아빠는 병원 응급실도 못 가고 이리 갔으니 참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아프면 본인이 알아서 병원을 가야죠!’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아프다면서도 병원을 안 갔다니까요!’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L은 기러기 아빠로 평생 살다가 이상한 남편이 되어 죽은 꼴 밖에 안된다.

기러기아빠가 되어 살다가 그냥 쓸쓸하게 고독사를 한 것이다.
이렇게 산다는 것이 과연 인간답게 사는 것일까?
기러기 아빠로 산다는 것은 선택하지 않아야 할 일이다.

인생은 한번 사는 것이다.

귀중한 인생을 살면서 가족으로 위장한 타인들을 위해 살 필요는 없다.
만일 기러기 아빠로 살면서 자신의 삶이 위태롭다면 과감하게 자신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L의 나이는 고작해야 이제 60, 환갑이 꼭 된 나이였다.

잘 가시게나, L, 그리고 다음 생에는 절대 기러기 아빠로 살지 말게나.

어느새 또 한 해가 지나고, 새해가 왔네.

자네가 있는 미국에서 이제 마음이 편안한지 묻고 싶다네.

이제 편히 쉬시게나… 내 친구같은 후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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