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이낙연 학력, 경력, 가족, 생애에 대해 알아보자

이낙연은 동아일보 기자, 제37대 전라남도지사, 제45대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역임한 정치인이다.

2024년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차기 지도권을 둘러싸고 본격적인 한판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이재명의 리더십에 의문과 직격탄을 날린 이낙연은 신당 창당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야권 지형 재편의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따라서 앞으로 정치판에 있어 새로운 변수로 작용될 이낙연이라는 인물에 대해 ‘상식은 권력이다’ 차원에서 한번 들여다 보자.

이낙연

이낙연

민주당에서 지난 대선 후보로 뛰었으나 이재명에게 밀려서 잊혀졌던 인물 ‘이낙연’에 대한 인물탐구입니다.

이낙연은 11월 28일 공개 학술포럼에서 이재명 체제로는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피면서 자신이 본격적으로 나설 것을 시사했다. 이재명 체제는 당이 사당화 되어서 중도 표심을 얻기가 힘들고 총선을 진두지휘해야 할 사람이 사법리스크에 발이 묶여 있다면서 본인이 차기 총선에 있어 나설 것을 강력하게 천명했다.

이낙연 인물탐구

이낙연의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본다.

이낙연 프로필

이낙연(李洛淵), 영문으로는 Lee Nak-yon으로 표기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이씨(李氏)이고, ‘완풍대군파’라 한다.

출생 : 1952년 12월 20일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로3길 56-25
거주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내수동 경희궁의아침 3단지
본관 : 전주 이씨
학력 : 광주제일고 졸업, 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사
경력
동아일보 국제부 부장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민주당 원내대표
제16·17·18·19·21대 국회의원
제37대 전라남도지사 : 2014년 7월 1일 ~ 2017년 5월 12일
제45대 국무총리 : 2017년 5월 31일 ~ 2020년 1월 14일
정당 : 더불어민주당
배우자 : 김숙희
자녀 :1남
현직 :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이낙연 경력

  1. 한미연합군사령부 카투사 미8군 제21수송중대 병장 만기 전역
  2. 한국투자신탁 근무
  3.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4. 동아일보 국제부 주일특파원
  5. 동아일보 기획특집부 기자
  6. 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7. 동아일보 논설위원
  8. 동아일보 국제부장
  9. 새천년민주당 전라남도 함평·영광지구당위원장
  10. 제16대 국회의원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 새천년민주당)
  11. 국회 한일의원연맹 안보외교분과 부위원장
  12.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13. 새천년민주당 기획조정위원장
  14. 새천년민주당 대선기획단 부단장
  15.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
  16. 제16대 대통령 취임사 준비위원회 위원
  17.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
  18. 제17대 국회 전반기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19. 민주당 원내대표
  20. 민주당 부대표
  21. 중도통합민주당 최고위원
  22.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23. 제17대 대통령 선거 정동영 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보특보단장
  24. 제18대 국회의원 (함평군·영광군·장성군 / 통합민주당)
  25. 민주당 전라남도당위원장
  26. 민주당 사무총장
  27. 민주통합당 전라남도당위원장
  28. 제19대 국회의원 (담양군·함평군·영광군·장성군 / 민주통합당)
    2017.5. 제45대 국무총리 (문재인 정부)
  29.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30.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대위원장
  31.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종로구 지역위원장
  32. 제21대 국회의원 (서울 종로구 / 더불어민주당)
  33. 제4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2021.7.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경선 2위), 2022.2.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거대책위원장, 2022.6.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이낙연 생애

본관은 전주 이씨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 형인 완풍대군의 후손으로 1952년 1월 11일(1951년 음력 12월 20일) 태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태생이 일단 ‘뼈대 있는 수저’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유년기에 집안은 그리 잘 사는 편은 아니라 어머니가 채소장사를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기본적으로 똘똘한 편이라 무난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동아일보 기자를 하던 1980년에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고등학교 교사 김숙희(金淑姬)와 맞선자리에서 만나 1980년 결혼했다. 그리고 외동아들 이동한(李東翰)을 두었다.

이낙연은 인생의 황금기인 청춘시대를 언론계에서 보냈다.

그는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한 이후 정치부와 외신부 기자로 활동했다. 그 당시에 정치부 기자는 지금과 달리 언론계에서도 아주 명석한 친구들이 가는 코스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이라면 인정해주는 편이다. 이후 정치부, 기획부, 국제부 차장을 역임하였고, 1997년 10월부터 1999년 2월까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1999년 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동아일보 국제부 부장을 역임하고 퇴직하였다. 그러니까 약 20년의 세월을 동아일보에서 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낙연은 정치부 기자에서 어떻게 본격적인 정치를 할 수 있었는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그는 ‘동교동계’로 불리던 옛 민주당을 출입했다. 1987년 김대중이 사면복권된 후 그의 밀착 취재를 담당하던 이낙연은 취재 과정을 통하여 김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인연이 된 것이다. 이낙연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대통령 겸 새천년민주당 총재 김대중의 발탁으로 자신의 고향인 전남 함평영광 지역구에 출마하여 손 쉽게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호남에서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민주당 공천이면 바로 국회의원 뱃지를 다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그의 정계진출은 순풍에 돛 단듯 나갔다고 보면 된다.

사실 정치부 기자들은 각 당에 출입을 하면서 유력한 정치인과 교분을 쌓는 경우가 많은데 이낙연도 이러한 코스를 밟은 것이다. 아무튼 이낙연은 김대중에 일단 낙점이 되었고 자신의 든든한 기반이 되는 고향 호남에서 유력한 정치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언론계 출신으로 정치인이 된 그는 자신의 장점을 활용하여 2002년 치러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의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또한 노무현 당선 이후에는 당선자 대변인으로 활동을 이어갔으며, 대통령 취임사 작성도 맡는 등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러니까 언론계 출신으로 문장력이 뛰어난 인물이라는 평가는 가능하다.

이낙연에 있어 국회 뿐만 아니라 광역자치단체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그에게 또 다른 정치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이낙연은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7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때 이낙연은 도지사 활동을 하면서 친서민적 호남 정치인으로 급 성장 한다. 전라남도 서민시책으로 ‘100원 택시’,’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사업’, ‘주거환경 취약계층 행복둥지 사업’, ‘서민 빚 100억 탕감 프로젝트’ 등의 시행은 그가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호남인들에게 각인되었다.

결국 전남지사 재임 중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로 이낙연은 내정되었다. 그는 2017년 5월 31일 임명동의안 통과 직후 임명장을 받아 제45대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2020년 1월 13일 물러나기 전까지 958일(2년 7개월 13일)을 재임하면서 그는 제6공화국 최장기간 재임 국무총리라는 기록을 남겼다.

2020년 1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울 종로구 후보로 출마하였다. 여기서 그는 보수진영의 대권주자로 꼽혔던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맞붙어 승리하였다. 그는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 타이틀을 가지게 되면서 명실상부한 정치인으로 인정받는다.

2020년 8월 29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60%가 넘는 득표로 김부겸 전 의원, 박주민 의원을 제치고 더불어민주당 제4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2021년 3월 9일, 대선 출마 요건에 맞추기 위해 그는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21년 7월 4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여 ‘필연캠프’를 조직하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 그해 9월 8일에는 국회의원직에서 사퇴를 선언했고, 9월 15일 본회의에서 가결되어 사퇴했다. 그러나 2021년 10월 10일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낙연은 39.14%를 득표하여 2위로 낙선했다. 이때 경쟁후보였던 이재명에게 불과 15만표로 밀리면서 대권 도전이 좌절되었으니 본인으로서는 무척 허탈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를 10월 13일 수용하고 10월 24일 이재명 후보의 대한민국대전환 선거대책위원회에 상임고문 자격으로 참여했다. 그 해 12월 27일에 이재명과 공동으로 국가비전·국민통합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다. 2022년 2월 8일에는 기존 송영길 상임선대위원장 겸 당대표보다 더 높은 자리인 총괄선대위원장에 취임해 선거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이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이낙연은 잠잠한 세월을 보내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그는 ‘새로운 창당’도 할 수 있다는 출사표를 던지면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낙연 논란

이낙연은 언론인 출신이라 목소리도 낭낭하고 부드러운 편이며 비교적 대인관계에 있어서 좋은 평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인들에게 있어 이미지가 좋다고 해도 논란이 있다면 따져 봐야 할 일이다.

선거사무소 관계자의 당비 대납 논란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이낙연 전남도지사 후보의 비서관 이모씨를 중심으로 당원 2만여명분 당비 4500여만원을 대납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검찰은 공직선거법상 금지되는 기부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 이씨는 당비 4,500만원 가량을 대납한 혐의로 이미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검찰은 이낙연 전남지사후보의 비서관 이씨 등을 상대로 자금 출처 등을 추궁했지만 이들이 입을 다무는 바람에 이 지사가 개입한 증거는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에 이모씨는 복합기 입대료 대납사건 수사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궁금증을 자아냈다.

부인의 위장전입

2017년 5월 25일 진행된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부인의 위장 전입 사실이 문제가 됐다. 1989년 3월, 이낙연 부인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강남구 논현동으로 전입했다가 그해 12월 다시 평창동으로 주소를 옮겼다. 이낙연은 미술 교사였던 부인의 학교 배정을 위해 위장 전입을 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낙연은 2017년 5월 2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이 후보자 배우자가 1989년 3월부터 12월까지 강남구 논현동에서 실제 거주했느냐’고 묻자 “실제 거주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위장전입이 맞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당당하게 답했다.

아들 군면제

이낙연은 아들이 하나 있다. 아들은 대학교 1학년이던 2001년 8월 3급으로 현역입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4개월 뒤 운동을 하다 어깨를 다쳐 탈구가 발생했고 2002년 2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이낙연의 아들은 같은 해 4월과 5월 재검을 받았지만 5급을 판정을 받으면서 군대에 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이 후보자가 아들의 입대를 위해 병무청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노력했지만, 규칙상 어렵다는 판정 결과를 받았다”며 탄원서 사본을 공개했다.

아들의 실언

2020년 3월 4일, 이낙연의 아들 이동한은 유튜브 방송 ‘의학채널 비온뒤’에 출연하여 “코로나는 코로 나온다”라고 말하며, 코로나 사태로 농담을 하자 논란이 일었다. 때가 코로나로 비상한 시기였고 이낙연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재난대책안전위원장을 맡고 있었기에 아들의 실언은 논란이 되었다. 그러자 아들 이 씨는 이 전 총리 측을 통해 전달한 입장문에서 “의사로서도 부족했고, 국민의 아픔을 헤아리는 데도 부족했다”며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리고 방송 등 대외활동은 즉각 중단하겠다”고 알렸다.

족발 사진 도용

2020년 4월 23일, 이낙연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종로구 전통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시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겠다며 자신의 트위터에 창신골목시장의 매운족발 사진을 인증용으로 올렸다. 그러나 어떤 네티즌이 이낙연 트위터의 해당 사진이 어느 네이버 블로그에 2년 전 올라온 사진임을 찾아내어 알리면서 사진을 도용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족발 사진을 도용한 일이 커지자, 이낙연은 사진의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실수했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전통시장에 가서 족발 하나 먹고 사진을 찍으면 될 일인데, 좌우지간 사진 도용 사건은 웃기는 일이 된 것이다.

부동산 갭투자 논란

이낙연은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서울 종로구 내수동 경희궁의아침 3단지를 전세를 끼고 구입했다. 배우자와 함께 해당 아파트를 17억 5,000만원에 매입했는데, 이 중 12억 원이 임대보증금으로 이 의원의 채무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즉 5억 5,000만원으로 해당 아파트를 사 갭 투자를 한 것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갭 투자를 억제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에 어긋났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6.17 부동산 대책에서 주택담보대출을 활용한 갭 투자를 차단하기 위해 6개월 이내 실거주를 하도록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도 지난 6.17 대책 발표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현금이 많은 사람들의 갭투자가 근본적 문제”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내로남불이라는 지적이 따랐다. 이에 대해 이낙연 측은 “전세로 거주 중인 경희궁자이의 전세 완료 시기(2022년 2월)와 마침 같은 집이 경희궁의아침에 있어 매입, 무주택자가 1주택자가 된 것”이라며 “실거주 목적이지 갭투자라고 볼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전세 완료가 1년 6개월 남은 시점에서 주택을 사들인 배경에 대해선 “총선 과정에서 지역구 의원으로서 왜 지역구에 집이 없느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그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이낙연을 바라다 보는 시각

언론인, 정치인으로 이낙연은 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주가 많으면 복이 박한 것인지 또는 운이 없는지 이낙연은 전남도지사까지는 잘 나갔지만 결정적으로 대통령 후보에서는 밀렸다. 국무총리까지 역임하면서 관운도 무척 좋은 것으로 보였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재명의 손을 흔들어 주면서 그만 이낙연은 여기서 좌절 아닌 슬픔을 맛 보았을 것이다.

이낙연의 장점은 오랜 세월을 언론인으로 지내면서 다듬어진 내공과 5선 의원, 전남도지사, 국무총리 등 고위관료의 길을 걸어 왔다는 점에서 상당한 능력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돋보인다. 따라서 이낙연은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다는 것이 충분히 증명이 되고 또 인정받았다.

이재명에 비해서 개인적 차원에서 비난을 받을만한 것이 딱히 없다는 것도 민주당에서는 그나마 저평가 우량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보수층에서도 ‘이낙연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평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회색 이미지라는 역평가도 따르고 자신을 확실하게 지켜줄 콘크리트 지지층이 없는 것도 그의 정치적 한계이다.

이재명은 ‘개딸’, 문재인인 ‘문빠’라는 광적인 지지층이 있어서 민주당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낙연에게는 그러한 광적 팬들로 구성된 정치적 자산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한편 이낙연은 보수 정당과의 협치를 논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 약점으로 되었다. 민주당 지지층들은 극력한 선명성을 중시하는 정치인에게 점수를 준다는 사실을 그는 미리 간파해야 했다.

어쩌면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인상이 자신의 강력한 지지층을 모으는 것에 실패한 요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낙연은 그가 당 대표로 있으면서 2021년 신년사에서 이명박, 박근혜 사면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것이 민주당내 지지층에게 큰 반발을 샀다. 그후 지지율이 급락하는 계기가 되면서 이낙연은 결국 민주당 대선 후보 대세론에서 밀렸으니 이 또한 운명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온화한 정치인 보다는 전투력 만땅으로 고난과 역경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정치인을 선호한다. 언론계에 못 담았다가 안정적으로 상승가도를 달려온 이낙연은 민주당내에서 구조적으로 그리 좋은 지지를 얻기 힘들다. 어찌보면 합리적 온건주의자 같은 이미지로는 민주당에서는 인기를 유지하기 힘들다.

이런 판에서 과연 이낙연이 앞으로 창당을 하여서 새로운 정치구도를 창출할 지는 그의 이미지만큼이나 미지수이다.

상식은 권력이다 nBo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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