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처절한 상황에 처하면 정말로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치욕도 맛본다. 그러나 힘든 역경을 이기면 끝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바로 이런 때, 쓰는 말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와신상담(臥薪嘗膽)은 자신의 특정한 목적, 목표, 앙갚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 나간다는 뜻이다.
臥:누울 와, 薪:섶나무 신, 嘗:맛볼 상, 膽:쓸개 담
와신상담(臥薪嘗膽) 뜻
한자 그대로만 보면 “장작 위에 누워서 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장작 위에서 그냥 있는 것도 힘든데, 여기에 또 쓸개까지 맛을 보니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이겠는가? 그렇지만 오로지 자신의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정도 고통은 얼마든지 이겨 나간다는 말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유래
때는 바야흐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시절이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원수 지간이 되어서 싸웠다. 당시에 전력이 월등하였던 오나라는 월나라가 까부는 것에 대해 분노를 하고 전쟁을 벌였다. 결국 월나라 왕 구천(勾踐)은 전쟁에 패배해서 붙잡혔다. 그러자 오나라 장수였던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야 후환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차(夫差)에게 건의를 했다. 그렇지만 오나라 왕 부차는 전쟁에서 이겼다는 자만심으로 가득해서 자신이 마치 큰 위엄을 갖춘 것 같이 구천을 죽이지 않고 자신의 노예로 삼았다.
이때 월나라 왕 구천(勾踐)은 죽을 처지에 이르지만 미리 뇌물을 받아먹었던 오나라의 절대 간신 백비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간신 백비는 구천을 살려줘도 아무 문제가 없다면서 부차(夫差)를 설득하였다. 부차는 간신 백비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구천을 살려줘도 뭐 대세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니 똥도 먹어주마
오나라 포로로 잡힌 월나라 왕 구천(勾踐)은 살아 남아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신의 본심을 속이고 부처에게 아부를 하면서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천은 부차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부차(夫差)의 똥까지 먹어 보면서 병세를 봐주기까지 했다. 크, 다른 사람의 똥까지 먹었다니 그 얼마나 치욕적이겠냐마는 구천의 속셈은 다른데 있었다. 내가 니 똥을 먹지만 나중에는 너를 죽이겠다는 본심은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장작 위에 누워서 쓴 쓸개도 먹는다
자신의 똥까지 먹어준 구천(勾踐)의 충성심에 감탄한 부차(夫差)는 그를 다시 고향인 월나라로 보냈다. 똥까지 먹으면서 충성을 했는데 설마 자신을 배신하겠냐는 오만함도 있었다. 월나라로 간신히 돌아온 구천은 이때부터 스스로를 다시 잡았다. 그는 장작에 눕고 쓸개를 먹으면서 반드시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이 바로 와신상담이다.
구천의 복수, 부차의 패배
월나라로 돌아간 구천(勾踐)이 복수하기 위해 국력을 키우는 동안에 부차는 이것도 모르고 미인인 서시와 구중궁궐에서 마냥 좋은 세월만 보내고 있었다. 오자서의 충언도 묵살하였다. 부차는 오자서의 충언을 받기 보다는 간신 백비의 농간에 속아 그에게 죽으라고 자결을 명했다. 결국 한심한 부차가 내린 명령에 오자서 장군은 자결하였다. 오나라의 가장 센 장수였던 오자서가 자결했다는 소식을 듣자 구천은 때는 지금이다면서 오나라를 쳐 들어갔다. 결국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부차(夫差)는 길거리에서 썩은 음식으로 연명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구천에게 봐 달라고 화의를 요청했지만 구천은 얄짤없었다.
부차에게 복수, 죽어라!
월나라 구천(勾踐)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 부차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 부차는 스스로 죽기 전 “내가 죽으면 저승에서 오자서를 볼 면목이 없으니 눈을 가려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스스로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았다. 충신이었던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간신 백비의 달콤한 말에만 귀를 기울였던 왕의 최후는 이렇게 비참하게 끝났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주는 교훈
인생에 있어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그것을 감내하기가 정말 힘들다. 그렇지만 자신이 정말로 어떤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여건을 극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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