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전쟁 영화 후기, 이승만 대통령을 다시 본다

설 연휴 기간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메가박스에서 관람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건국전쟁을 보러 왔는데 관람객들은 장년층이 많았다. 영화관 입장권 통계에 따르면 설 당일에 5만여명이 관람해 박스오피스 4위였는데 어느새 3위까지도 오르고 누적 관람객 수가 18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건국전쟁’은 영화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다큐멘터리이다. 이승만대통령의 정치 여정과 삶을 기록으로 전달하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심을 갖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엄청난 일에 있어 이승만 이라는 인물이 차지한 비중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건국전쟁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이다. 엄연하고 객관적인 기록물과 자료에 근거하여서 이승만을 재조명한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국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활동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상식이다.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남긴 유언)

건국전쟁 영화 후기

건국전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진과 영상 자료, 그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포함한 주변 인물과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구성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젊은 시절에 노력했던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재임 기간 업적을 명백한 기록물을 통하여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건국전쟁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이다. 엄연하고 객관적인 기록물과 자료에 근거하여서 이승만을 재조명한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국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활동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상식이다.

원래 다큐멘터리는 재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냥 기록물을 보여주는 단순한 과정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그동안 이승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것을 재조명해주고 있다. 교과서를 통하여 우리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건국대통령이라는 단순한 사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건국전쟁은 그의 인물 됨됨이와 역사적 활동을 새롭게 보여 주고 있다.

영화 건국전쟁은 대한민국이 독립하는 건국 과정에서 이승만 전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3대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다.

우리나라에서 문화, 예술, 영화계에는 좌측 깜빡이를 넣고 달리는 놈들이 많아서 인터넷에서도 편향성이 크다. 12.12 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 같은 영화는 허구로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중들은 아무 생각이 없이 그것을 사실과 같이 믿어버린다. 참 슬픈 현실이고 상식에 없는 짓 입니다. 그러나 건국전쟁은 사실과 기록을 그대로 보여준 다큐멘터리로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이라면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많다.

허구적인 영화(서울의 봄)와 다큐멘터리(건국전쟁) 조차 분별할 줄 모르면 좌파들에게 계속 속게 되고 역사를 왜곡하게 된다. 이승만 일대기를 다룬 건국전쟁에서 외국의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저는 이승만이 한국 독립에 대핸 가능성을 믿고 그걸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그 과정에서 미국 정책결정자들에 맞서야 한다면 이승만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단순히 국가를 세우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창설 후 생존까지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나라가 직면하는
여러 도전을 얼마나 잘 이겨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이승만 생애

이승만은 1875년(고종 12년) 조선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배재학당에서 수학하며 신학문을 연마하였고, 독립협회, 만민공동회, YMCA에서 활동하였다. 고종이 독립협회 지도자들을 체포 구금하고 만민공동회를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박영효의 황제 퇴위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그는 5년 7개월 간 한성감옥에 투옥되기도 했다. 그러다 그는 러일전쟁 중에 사면되어 을사조약의 국제법적 부당함을 주장하는 민영환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돼 활동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주권회복을 위한 청원외교를 펼쳤다.

건국전쟁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이다. 엄연하고 객관적인 기록물과 자료에 근거하여서 이승만을 재조명한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국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활동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상식이다.

이승만은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이후 국무위원,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 등을 지내며 주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반대하였고,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위한 주도적 역할을 했다.

초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거쳐서 1948년 국회 간선제로 치러진 이승만은 제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이후 직선제로 바뀐 1952년 2대 대선과 1956년 3대 대선을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따라서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한 기간은 총12년이다.

이승만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 농지개혁, 초등학교 의무교육,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대대적인 학교 건립, 평화선 선포 등과 같은 업적을 남겼다. 초대대통령 시절에는 국가적 위기를 가져왔던 6.25 전쟁을 겪으면서 자유포로석방이라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사건으로 국민들의 반발을 샀고 1960년 3.15 부정선거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4.19 혁명이 일어나자, 모든 책임을 지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다. 그후 그는 미국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90세가 되던 1965년 7월 19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하와이의 어느 요양원에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왜 이승만을 왜곡하는가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을 악의적으로 평가하고 왜곡된 논리로 선전선동을 일삼는 무리들이 있다. 그들은 이승만을 친미주의자, 친일파로 매도하고 심지어는 반민주주의자로 왜곡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승만을 폄하하는가? 실제로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이승만을 저평가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동시에 북한에 대해 정통성 비중을 더 두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교묘하게 이승만 평가를 왜곡하여 건국대통령을 지속적으로 깎아 내리고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동시에 북한을 찬양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한 숨어 있는 빨갱이들의 활동 때문에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는 이렇다 할 건국대통령의 기념관과 동상 하나 없다.

건국전쟁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이다. 엄연하고 객관적인 기록물과 자료에 근거하여서 이승만을 재조명한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국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활동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상식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이승만의 생각

이승만은 “공산주의는 콜레라와 같다. 인간은 콜레라와 같이 살 수 없다.”고 하였다. 특히 건국 과정에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이 보여준 행태와 6.25전쟁을 통하여 그의 반공사상은 확실하게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반공주의자 이승만

“공산주의는 실패한다.”고 1923년 태평양잡지 ‘공산당의 당부당’ 中 강조했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이유로 공산주의는 실패한다고 그는 단언했다.

  1. 재산을 나누면 근로의욕이 꺾인다.
  2. 기업가를 없애면 혁신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3. 지식인을 없애면 모든 사람이 우매해진다.
  4. 종교를 없애면 도덕이 타락한다.
  5. 소련을 조국으로 믿으면 배반 당한다.

1946년 2월, 6주간의 민정 시찰을 위해 이승만은 지방을 순회하며 돌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이론상으로 공산주의는 그럴듯하다. 만일 이 주의를 전달하려는 사람들이 단순히 이 주의를 주의대로 전하면 나도 그들을 존경할 것이다. 만일 이 주의가 민주주의와 같이 세계 대중에 복리를 줄 만한 주의가 된다면 아무도 막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자들이 아름다운 이상으로서 양의 가죽을 만들어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야심자를 덮어 씌워 공산주의를 소련의 앞잡이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각각 정부를 파괴시키고 나라를 크레믈린의 독재하에 넣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당신의 동생일지라도 공산주의의 훈련을 과학적으로 받은 뒤에는 당신의 동생이 아니다. 그 동생은 따라서 소련을 자기의 조국이라고 부르고 국가 공업을 파괴하며, 당신의 정부를 뒤엎고 당신의 동포를 넘겨 준다. 그러면 드디어는 당신의 나라가 소련의 위성국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엔 당신의 동생은 집 없는 거지가 되고, 가족은 노예가 되며, 그 뒤에는 이것을 깨달아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영화 건국전쟁에서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 초대대통령으로 기선제압식 외교력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성사시키는 주도적 리더십을 보였다. 국민의 의무교육을 확대하고자 그는 노력했다. 또한 원자력의 필요성을 제창하여 과학자 육성 등을 강조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의 청사진이 되었다. 6.25 전쟁에서 반공포로 석방을 지시한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커다란 결단이었다.

건국전쟁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던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만든 영화이다. 엄연하고 객관적인 기록물과 자료에 근거하여서 이승만을 재조명한다.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국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승만의 활동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상식이다.

이승만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예우를 새롭게 하고 이승만 대통령기념관을 건립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이자 공산주의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지도자였다. 이승만의 결단력 있는 정치와 외교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부강한 대한민국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상식은 권력이다 nBo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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