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이 무척 빠르게 발전하고 새로운 신차들은 계속 생산된다. 그러나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구식 자동차가 때로는 묘한 향수를 불러옵니다.
‘상식은 권력이다’에서 [오늘의 사진]으로 딱정벌레 차라 불리는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를 소개합니다.
사진에 있는 길 위의 딱정벌레 차는 서울역 가까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것입니다. 번호판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정식운행은 하지 않고 그냥 많은 사람들에게 보라고 전시해 놓은 것 같습니다. 이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를 아는 사람들은 걸어가다가 잠시 서서 다시 한번 유심히 보기도 합니다. 비틀의 자동차 색상도 빨간색이라서 더욱 시선을 끌어 당깁니다.
딱정벌레 차, 폭스바겐 비틀
지금은 작고 볼품 없는 자동차 같지만 폭스바겐 비틀은 한 때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역사도 정말 오래되었습니다. 폭스바겐 비틀은 독일의 유명한 자동차 제조사 폭스바겐에서 1938년부터 2019년까지 생산한 소형 자동차입니다. 폭스바겐 하면 바로 생각나는 독일의 대표적인 자동차가 바로 ‘비틀’입니다. 그리고 이 폭스바겐 비틀은 세계 자동차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자동차로 지금까지도 평가 받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비틀은 영어권에서 불리는 이름이고, 독일에서는 ‘Käfer(케퍼)’라고 합니다. 비틀은 자동차의 생김새가 마치 딱정벌레 같이 생겨서 딱정벌레 차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그런데 비틀은 그냥 딱 봐도 딱정벌레 차라는 별명이 더 친근하다. 누군지 차 별명을 잘 지었습니다.
폭스바겐 비틀 탄생의 비밀
우리나라에서는 소 달구지가 다니던 시절에 놀랍게도 독일은 그때도 이미 자동차를 잘 만들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바로 폭스바겐 비틀을 만들게 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매우 놀랍기만 합니다. 1934년에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이 누구나 탈 수 있는 국민자동차를 제작한다는 대단한 아이디어를 냅니다.
참고로 요새 젊은이들 가운데는 우리나라 현대-기아 자동차가 유럽의 자동차 회사 같이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회사로 착각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피자나 치킨도 아주 오래전부터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분들은 알겠지만 지금 우리가 편리하게 타는 자동차나 피자 및 치킨 등 먹거리들은 고작해야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대유행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이야기 잠시 삼천포로 빠졌는데, 다시 딱정벌레 차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이 자가용으로 누구나 탈 수 있는 보급형 자동차인 “국민차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공학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셰에게 의뢰하였다. 이때 히틀러는 국민자동차를 제작할 때 조건을 다음과 같이 걸었다.
독일노동전선 산하 여가 기관인 카데에프(KdF)가 주관하는 여가 프로그램에 따라 일반적인 독일인 1가정의 단위에 맞춰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성인 4명도 가능)을 태울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족이 타는 국민차라는 관점은 철저하게 지키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100km/h로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는 차가 되어야 한다. 이때 자동차 속도로 시속 100km라니 대단한 성능이 아닐 수 없다. 가격은 1,000마르크로 저렴하고 튼튼한 차를 만들어야 한다. 이 당시 1천 마르크는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만 대략 1천 만원이다. RR을 적용하되, 독일의 혹독한 겨울 환경을 고려하여 공랭 엔진을 탑재해야 한다. RR(Rear-engine, Rear-wheel drive) 후방 엔진 후륜구동을 말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무리한 제안을 내건 히틀러의 요구를 충족하는 자동차를 제작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포르셰는 체코의 자동차 회사 타트라에서 생산하던 T97의 구동계 레이아웃과 엔진 설계를 기반으로 마침내 히틀러의 요구대로 자동차를 만들었다. 이렇게 처음 만들어진 폭스바겐 비틀은 1938년 카데에프바겐(KdF Wagen)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됩니다.
히틀러는 폭스바겐 비틀을 아주 흡족해 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위신을 과시하는 사열차로도 이용합니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흉이라는 히틀러의 아이디아와 자동차 천재 포르쉐의 실력으로 제작 된 비틀은 악마와 천재의 공동 발명품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폭스바겐 비틀은 나오면서 대히트를 쳤고 이후 계속 제작되면서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세계적인 차로 명성을 날립니다.
그러나 2차 대전 당시 히틀러가 국민차라는 타이틀을 걸었지만 실제로 당시에 독일 국민들은 이것을 구입하지 못했고, 히틀러는 폭스바겐을 통해 대국민 사기를 쳐서 전쟁자금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한편 폭스바겐 비틀을 만든다는 자동차 공장은 군용차량 생산 공장이 되었다.
폭스바겐 비틀 – 뉴 비틀 – 더 비틀
폭스바겐 비틀은 1938년 첫 선을 보였다. 이것이 바로 폭스바겐 1세대이다. 이후 독특한 디자인으로 높은 인기를 얻은 바 있는 폭스바겐 뉴 비틀이 1998년 나왔다. 그러다가 2011년에 폭스바겐 3세대 더 비틀이 오리지널 비틀의 디자인 감성을 그대로 이어 받으면서 역동적이고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히틀러와 포르셰
세계사를 보면 역사는 또라이들에 의해서 제작되고 연출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만일 이때 히틀러가 몽상가적이지만 아주 저렴한 가격에 안정적이고 튼튼한 자동차를 제작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폭스바겐 비틀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히틀러가 이러한 국민차 아이디어를 구체화 하려고 하여도 그 당시에 포르셰가 없었다면 폭스바겐 비틀은 탄생 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세계 자동차 역사에 있어 딱정벌레 자동차는 이렇게 만들어졌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딱정벌레 같은 폭스바겐 비틀은 자동차 생김새도 재밌고 친근감이 든다. 언젠가 한 번은 몰고 싶은 클래식 올드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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